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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y 27. 2021

위험한 감시자들, 테러리스트인가 테러방지자들인가

2015년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쓴 글


지난 11 13 발생한 파리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 제정 논의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8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다는 것을 IS 알아버렸다' 면서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처리하도록 국회를 압박했다. 그러나 야당과 전문가들은 테러방지법의 추진이 테러의 방지를 위한 정보 수집을 넘어 불법 사찰과 개인의 자유로운 정보 이용 권한을 제한할  있기 때문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감시와 통제의 역사는 단지 하루 이틀 논의된 주제가 아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1791 원형감옥인 파놉티콘을 지어 죄수들을 수감할 것을 제안했다. 파놉티콘은 원형의 건물이다. 중심에는 죄수들을 감시할  있는 감시 타워가 있고 바깥쪽에는 원주를 따라 죄수들을 수감하는 방이 있다. 건물의 구조도 특이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시의 방식이다. 중앙 감시 공간은 어둡게 하고, 죄수 수감 시설은 밝게 유지하는 방법을 통해 간수가 직접 감시하지 않더라도  간수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21세기의 파놉티콘을 범사회적으로 구축해 벤담이 설계한 감시의 메커니즘보다 더 정교하게 확장하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벤담은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감시 체계를 제안한 것이지만, 현대사회에서의 감시는 범사회적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대다수의 국민들이 SNS를 사용하고 있고, 핸드폰 통화 내역과 문자 등은 언제라도 감시당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은 국정원과 검경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 인권침해는 물론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지난 대선 개입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국정원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조치가 우선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및 댓글 조작 등이 아직 논란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테러 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왠지 석연치 않다.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또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의 추진은 장기집권을 위한 감시 관리 강화법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국정원은 국제적 정보활동 공조 강화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자국민을 상대로 개인정보나 금융, 사업 정보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국정원에게 부여하는 것은 '벼룩 잡느라 초가삼간 태우자는 격'이다.


무장단체의 테러는 저 멀리 중동과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테러리스트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공안기관을 통한 감시와 처벌의 강화는 국민 인권에 대한 또 다른 위협 아닌가? 감옥 탈출 영화의 대명사인 쇼생크 탈출의 명대사가 있다. '두려움은 당신을 죄수로 가둬둘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테러 안전 공화국의 감시에 나의 자유를 담보 잡힐 수 없다. 진정 두려운 것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우리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전지전능한 감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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