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있는 형제에게
Dear Kyle, My bother from NY
어제 물어보셨던 수제 공책과 배나무 만년필은 제가 나름 의미를 두는 아이템입니다. 그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2015년 나의 필독서 노트: 가칭_내 책쓰기>
먼저, 수제 공책은 A5 사이즈이고요. 제가 직접 만든 가죽 커버를 씌워 만든 20 타공(20개의 구멍이 있는) 바인더 노트입니다. 저는 대략 10년 정도 독서를 하면서 저 노트에 필사와 요약을 누적 보관했었습니디.
읽은 것들을 제 머리가 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손과 발로 부지런히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그중 잃어버리거나 빛바랜 것들도 많이 있지만, 노트를 꺼내어 다시 읽을 때는 저는 '잃어버린 시간'이라도 찾은 듯 먼 시간 여행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소설 속 마들렌의 기억처럼 까마득한 것이었지만, 필사노트를 천천히 읽어보니 이전에 독서했던 내용들이 모두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요즘 이 노트는 제게 중요한 영감과 글감을 선물하는 중요한 보물 창고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다짐해 봅니다. 앞으로 10년은 필사나 요약이 아니라. 제 삶과 영혼이 담긴 저만의 글쓰기를 하겠다고. 이제 이 노트는 저의 작가일기가 되었습니다.
(10년 된 독서노트와 배나무 만년필)
배나무 만년필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만년필을 좋아합니다. 글은 제 생각을 담는 보석들 같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면 마음을 다잡는 의미로 좋은 만년필을 쓰려 노력한 지가 꽤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만년필은 더 특별합니다. 왜냐면 제가 직접 깎고 다음어 만든 수제 만년필이기 때문입니다.
30대 중반 어느 날 만년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종일 웹서핑을 하다가 영등포에 있는 오래된 만년필 공방을 찾을 수 있었죠. 저는 그날 칼퇴근하고 그 공방을 찾아갔습니다. 그 인연으로 이 배나무 만년필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은 옛날이야기입니다.
만년필에 사용되는 목제는 조각목입니다. 연필 하나의 부피가 작은 편이므로 원료가 되는 목재도 작게 소요되는 것이죠. 저는 이게 참 매력적입니다. 나무를 베지 않고 고사목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도 충분히 완성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자연을 해치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좋았습니다.
<심야 독서 살롱 아챕토>
저는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 읽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고전독서 살롱을 만드는 것, 읽고 쓰는데 필요한 가치 있는 문방구들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것, 위대한 작가들의 책들을 귀한 재료로 다시 엮어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입니다.
<예술책 제본 공방 아뜰리에>
이 중 미약하나마 독서 살롱과 만년필 제작은 이미 시작한 샘이죠. 마지막으로 수제 책제본이 남아 있는데, 다음 주부터 안국에 있는 공방에서 수련할 예정입니다. 저의 소박한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되겠죠?
貧者因書富 빈자인서부
가난한 사람은 독서로 부자가 되고
富者因書貴 부자인서귀
부자는 독서로 귀하게 된다.
<왕인석, 당송 팔대가>
저는 독서로 부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서로 귀하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비록 아직은 지혜 없이 대지를 떠도는 이방인의 신세이지만, 언젠가 본향을 찾아 돌아갈 생각에 힘을 내 봅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기분 좋은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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