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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수레 Aug 26. 2022

Mind the GAP

전동차와 승강장의 거리, 브랜드와 브랜드의 거리, 사람과 사람의 거리

2005년도, 영국 출장을 처음 갔을 때, 런던 지하철 요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정거장에도 약 4파운드(6300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 요금이 900원가량이었으니 얼마나 비싸게 체감되었을까! 전철역 티켓박스에 앉아 있는 역무원에게 1 정거장 전철 요금을 물어보자 역무원은 "걸어가라고" 충고해주었다.  Londoner(런던 사람들)에게도 지하철요금은 비싸서 한 두 정거장은 걸어가는 것이 상식인 것을 나중 에서야 알게 되었다.  


런던 지하철은 서울보다 약 110년 빠른 1863년에 첫 운행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 역사 플랫폼 바닥 곳곳에는 'MIND THE GAP'이라고 쓴 표지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승하차할 때 플랫폼과 전동차 사이 간격이 넓으니 틈새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런던 관광 기념품 가게에서도 'MIND THE GAP' 표지판을 형상화 한 기념품을 판매할 정도로 런던 지하철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문구이다. 


2012년도에 난 신세계인터내셔널의 GAP사업부 영업팀장으로 이직했다. GAP은 그 당시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캐주얼 패션 브랜드였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옷가게에서 출발한 브랜드 GAP은 한 때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는 패션 브랜드였으며 SPA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는 신조어와 Fast fashion이라는 말을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브랜드이기도 하다. 


브랜드 네임 Gap은 Generation Gap(세대 간의 Gap)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아울러서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의류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GAP이라는 브랜드 이름에 담았으리라. 즉 GAP브랜드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GAP을 줄이겠다는 비전이다. 


GAP은 한 때 미국 젊은이의 실용적 패션을 대표했다. 대학생 캠퍼스 룩으로 상징되었다. 특히 대표상품인 GAP 후드티는 시즌별로 컬렉션을 구매하기도 하고 같은 디자인을 ‘깔 별’로 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아직 한국에 GAP이 정식으로 론칭하지 않았을 무렵, 미국 여행을 가서 쇼핑을 해오는 아이템 중에 GAP 은 상위 품목 리스트에 있었다. 해외 직구나 병행수입업체를 통해서도 GAP은 한국에 없는 브랜드로서 인기가 많았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유통업체, 패션회사들은 GAP 국내 판매 프랜차이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미국 GAP본사에 구애를 펼쳤다. 


최종적으로 국내 유통 BIG 2의 롯데와 신세계가 마지막까지 경쟁을 펼쳤고, 2007년 최종 선택은 신세계백화점의 자매회사인 신세계인터내셔널로 낙점되었다. 아르마니, 코치 등 수십 개의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프랜차이즈 판매회사로서 오퍼레이션 경험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GAP이 한국에 공식 진출한다는 소식은 업계에서는 BIG NEWS였고, 한국 소비자들도 이제 한국에서도 GAP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흥분과 설렘을 가졌다. 


하지만 큰 기대 속에 한국에 론칭한 GAP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고 존재감이 미미하다. 한때는 명동, 홍대 등 핵심 상권에 대형 단독 매장을 오픈하고 주요 백화점에서 대형 매장을 운영하며 연간 매출 천억 원을 넘게 달성했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매출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서 GAP은 왜 고전하였는가?


첫 번째 원인은 가격이었다. 직구로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한데 굳이 한국 백화점 매장에서 사겠는가? 그러면 왜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 수밖에 없었을까? 답은 GAP미국 본사의 공급가에 있었다. 공급자가 비싸게 공급하니 수입판매자도 어쩔 수 없이 높은 판매가를 책정할 수밖에 없다. 

미국 본토에서 수시로 할인행사를 하거나 아웃렛에서 할인판매를 할 경우 한국과 2배 이상 판매 가격 차이가 나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는 GAP의 베이식 한 디자인 제품에 한국 소비자가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다. 매 시즌 바뀌지 않는 베이식 한 디자인의 제품을 살 바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니클로에서 구매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고객이 많았다. 


GAP본사의 글로벌 판매전략도 문제였다. 경쟁 브랜드라 볼 수 있는 ZARA, H&M, UNIQLO 모두 한국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마케팅과 영업에 대해서 현지화 전략을 충실히 하는데 반해, GAP은 여전히 프랜차이즈 판매를 고수한다.  GAP은 미국 현지에서도 경쟁력을 잃고 있어서 한국에 직접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미국 캐주얼 패션 브랜드 GAP과 심리적 갭을 느꼈다. 그것이 GAP이 한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였다. 한국 소비자들과의 심리적 GAP을 줄이려는 노력을 미국 GAP사가 하고 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이제는 패션업계를 떠났으니 말이다. 


20년 전 런던 지하철에서 읽고 난 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Mind the GAP"이라는 말이 브랜드 GAP을 생각할 때마다 묘하게 떠오른다. 


런던지하철은 전동차와 플랫폼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브랜드 GAP은 추구하는 목표와 고객이 받아들이는 현실의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한국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과 미국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GAP"

"한국 소비자의 선호 스타일과 미국 소비자의 선호 스타일의 GAP"

"GAP의 현지화 전략과 경쟁사인 유니클로나 ZARA의 현지화 전략의 GAP"이 크다.


“Mind The GAP” (between the platform and the train) 


오래된 영국 지하철 플랫폼에서 읽은 이 문구는 패션 브랜드 GAP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도 해당되는 금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넓혀라, 거리를 두라고 한다. 

"Mind the GAP" (between Persons).  


거리를 좁힐지 아니면 거리를 넓힐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졌다.

단지, 서로의 거리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만은 변함없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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