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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자리

by justit

그는 GI 김이다. 김치 GI이다. 하필 성이 김 씨라 김 씨 GI, 김치 GI, 조화로운 운율이다. 그런 리듬처럼 김 씨는 낯선 세계에 어울렸을까?
GI, General Issue 또는 Government Issue.
군대용품 또는 군인이다. 사람도 용품이라는 냉소.
전쟁엔 사람도 소모품이다. 미처 시작도 않았지만, 인간을 부품 취급하기는 여기서 그만.

김 씨는 미군이다. 영주권이 있어 그리될 수 있었을까? 아님, 취득 혜택을 위해 군인이 되었을까?

빌어먹을 의무 복무는 20대에 마치고도, 나이 마흔 줄에 다시 입대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땐 부산 사나이 었단다. 어느 3류 대학을 졸업했다. 머리통을 맞아가며, 지랄 같은 소리를 들으며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어느 아침, 사는 게 이따위가 아니란 생각이 불끈 들었다. 무단결근에 들붙은 징계 협박을 집어던졌다. 여태껏 질질 끌던 발가락에도 힘이 솟는다. 미국에 먼저 자리 잡은 친구가 있었다.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차라리 한국보다 나을 수 있어!"
기회의 땅. 능력에 따라 보상이 따르는 곳. 혹 재능은 부족해도 노력이 답하는 곳. 아메리칸드림이 어디 남의 것이겠는가?
식솔과 상의 없이 막상 일을 저지르니 이제는 불안이 따라온다. 그렇게 채비의 시간이 끝나고 미국이란 낯선 땅에 닿았다. 빌 게이츠가 되는 건 나중이고, 거기에서도 먹이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그런데 익히 예상 했지만, 사냥터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형편이 나아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 차츰 나아지리라 여기며, 이런저런 임시직을 전전한다. 마트 물품을 나르고, 세차장을 드나들고, 접시 닦이도 좋다.
푸념할 틈도 없이 하루는 지쳐 쓰러진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난다.
"괜히 왔나? 한국이라면 친구 만나 넋두리라도 늘어놓을 텐 데..."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벌컥 겁이 난다. 이러다 병이라도 들면 감당이 불감당이다. 이국만리의 한숨이 커져간다. 그래도 돌이키기엔 늦었다. 이럴수록
어깨는 펴고, 고개는 들어야 한다.
"Our national security and global peace depend on your courage. It's your time to protect this great nation—and stand for all humanity."
"국가안보와 세계 평화, 여러분의 어깨에 있습니다. 위대한 나라, 인류를 지키는 일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고개를 들었더니 정말 무언가 보인다. 소명이니, 거창한 의식 따위는 눈 밖이다. 숙식과 가족부양 자료를 얻을 터, 약간의 의지만 얹으면 된다. 안전과 평화는 그리로 실현되면 그만이다. 서둘러 지원서를 접수한다. 기술 병과라 나이도 통과.
지겨운 훈련과 실습 후에, 이제 그는 미군이 된다.
인생 마지막 기회처럼, 묵묵히 흘러, 남보다 빨리 진급했다. 미국 내지만, 가족과는 만만찮은 거리에 있다. 그러기를 몇 년, 주한 미군 근무 자원자를 모집한다.
떠나 온 조국, 거기를 다시 간다고?
한 가지로 있다면, 여기도 저기에도 이방인인 것이다. 하지만 영어는 서툴러도, 한국어엔 능통한 미국인이다.

'M 육공'
'M sixty'라 할 것을 미군도, 카투사병 누구도 알지 못하면서 알아들었다. 한국에 있는 미국인, 한국인인이 말하는 영어.
어째 그는, 여기서도 혼자이다. 미군이면서 그들과는 거리가 있다. 어눌한 영어로는, 카투사만큼이나 소통이 어렵다. 그런데 유창한 한국어 또한 쓸 일이 별로 없다. GI 김 씨는 삼촌뻘이다. 하지만 나이차가 그에게 거리를 준 건 아니다. 귀소 본능을 따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군생활을, 떠난 나라로 되돌아왔다.
복귀라는 말이 맞을까? 그에겐 정박점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타국에서 가슴을 펴보고자 했던 그는, 여전히 조아리고 있다. 군복이 아주 커 보인다.

카투사를 위한 날, 그는 미군 측 배려로 특별히 행사에 참가했다. Specialist Kim은 오랜만에 김 씨 아저씨로 돌아왔다.
말뚝박기, 족구, 제기차기...
이색적이지 않은 이색놀이가 펼쳐졌다. 김 씨는 이방인이지만, 몸놀림은 익숙했다.
"와 몇 년 만에 해보이, 몸이 안따르네. 나도 늙었는 갑따. 힘 좀 줬따고 이래 디비지노!"
한국말속에 또 다른 한국어, 사투리까지 유창하다.
혹 마음이 떠난 지 모르지만, 몸의 기억은 남아 있다.

우승을 거둔 소대에서 축하연이 벌어졌다. 어딘지 관계없이 GI Kim은 초대되었다. 그는 한사코 거절하다 자리를 함께 했다. 또 다른 어색함과 "어디서, 무슨 일로?"를 꺼려했을 것이다. 자리를 피하거나, 술로 자신을 잃거나. 그는 두 가지를 다 선택했다. 대신, 그는 자신을 마비시키는 쪽을 먼저 택했다.
격렬한 자기 상실 후, 흐릿한 가로등불이 그에게 쏟아졌다.
"여기 계셨네요."
나는 사실 그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동향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가 그리 일러주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이방인은 이 땅에 돌아와도 여전히 이방인이다.
"어, 강일병! 오랜만에 과음을 했지마는 울렁거리가.
좀 있다가 숙소로 갈라꼬."
그의 혀가 꼬인다. 영어도 아닌 것이 짧은 혓바닥 소리를 낸다.


군복을 두 번 입는다고 제대로 된 군인은 아니다.
'GI Kim'으로 불려도 '김치 GI'를 벗는 건 아니다.
김치를 먹고 싶지만, 마늘 냄새를 풍기기는 싫다.
그들의 체취보다 더하겠냐마는. 더욱 요즘엔 걔들도 라면에 김치 반찬을 후루룩 거리더구만.
절제 아닌 절제, 희한한 몸 사림이 그의 몫이다.
아무리 애쓴 들 'US, 우리 것, 'GI Joe'가 되기는 힘들 것이기에. 'GI 김 씨'는 끝내 'GI 조'씨는 아닌 것이다.

"하와이 전출 건이 있는 데, 그리로 갈까 봐. 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금방 가족이 그리워지네. 그래도 한 발짝이라도 가까우면 만날 기회는 늘겠지."
하와이.
미국 본토와 한국에서의 거리는 비슷하다. 세계지도를 평면으로 놓으면 중간쯤 보인다. 하지만 지구는 구형이라 실제는 한국에서의 거리가 두 배쯤 더 멀다. GI Kim의 삶이 평면에 있지는 않다. 이방인이란 굴곡진 행로는 훨씬 먼 길이다.
그는 오늘도 낯선 땅에서 묵묵히 걸어간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먼 길 위에 있다.
이방인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끝나지 않는 여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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