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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에

by justit


1. 탑은 탑이요, 돌은 돌이다.

"아빠, 탑이 뭐야?"
"그것은 말이야, 하늘을 향한 인간의 염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로 절에서 많이 볼 수 있지!"
"아, 탑이 뭐냐니까!"
"그것은 말이야..."
"그런 것 말고오...!"
어릴 때 딸내미가 하는 질문에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면서 놀려 먹던 장면이다. 인간은 시선을 올림으로써 무언가를 우러러보게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내려다보는 과시를 전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보이는 상징으로 드러낸다.
미국 뉴욕의 마천루는 자본주의 본토의 위엄을 나타낸다. 이를 뒤따른 상하이의 높은 건물은 사회주의 국가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음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이와 분위기가 다르게, 오랜 전통을 중시하듯 중세 건물들을 고집한다. 신의 위상으로서 각종 성당 건물들이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고, 인간의 높이는 제한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구시대 잔재를 털어내기 바빴던 곳은, 고층 시멘트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람이 하늘을 숭앙하기로 한다면, 어느 정도 높이가 적절하단 기준은 없을 것이다.


2. 낮은 데로 임하소서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이 서둘러 전철이 기다리는 승강장을 향한다. 곳곳이 계단이고, 높낮이가 달라지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바닥을 잘 살펴야 한다. 현대적 삶의 시선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지만, 하늘보다는 땅이 더 친숙해 보인다. 건물 높이를 보려고 일부러 고개를 들거나 할 필요는 없지만, 이 현대적 상징들은 건물 재질만큼이나 무뎌진다.
온통 황사며 미세 먼지로 뿌연 하늘을 쳐다볼 유인도 없지만, 하늘 한 번 쳐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자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간은 더 낮아져 자꾸만 지하로 내려간다. 더 높아졌으면서도 더 낮아지는 것이다. 사찰에 세워진 탑은 기껏해야 몇십 미터에서 몇 백 미터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이 올려다보면 하늘이 그 위에 있다. 목이 부러져라고 올려다보지 않아도,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가 보인다. 롯데 타워는 높이 555m로 세계 6위의 층고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올려 볼 때는 어느 중간층쯤의 창문이다. 어떤 사람이 저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을까?

3. 여기는, 서울 world!
상징은 하늘에서, 눈이 머무는 수준으로 내려왔다.
기껏 몇 십 미터 정도 높이였어도 온 하늘을 수용했는 데..
사람 간의 높낮이 시선이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뉴욕과 상하이, 롯데 타워가 위상을 뽐내며 마구 올라가는 동안, 사람 눈길은 훨씬 그 아래로 내려앉았다.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춰 봐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이다.
"롯데 타워를 보면 뭐가 눈에 띄지?, 느낌은?"하고 묻는 것에서야 겨우, "그러니까..."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걸 왜 묻는 데?" 하는 반문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봐야 하늘이 높고 맑다는 것을 인지한다. 탑이 뭐냐고 하는 질문이 있어야 딸내미를 놀려먹는 대답이 나온다. 인간이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미처 인식하기 전에 땅바닥을 먼저 훑어 버리는 것이다. 절탑의 기원은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건립물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은 탑 자체와 그 위로 둘러친 하늘이다. 그같이 존엄한 존재를 상징하는 축조물이 탑인 데, 우리는 또 다른 상징을 부여한다.
"롯데 타워를 보면 느낌은?"
"그냥 서울에 들어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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