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는 게 없는 장사죠 아침에 곁을 지나다가 화단에 핀 보라색 꽃이, 햇살이 본격적으로 내려 쬐니 꽃잎을 움츠렸다. 과다한 일조량을 피하는 이 꽃은, 그 자신의 에너지 효율을 꾀해 몸을 가려 버렸다.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는 그 자신이 익숙한 것일 게고... 이와 반대의 식물들도 많다. 음광 정도는 모를까, 직사광선은 멀리 하는 음지 식물이다. 자연은 이같이 많으면 피하거나, 아니면 아예 회피 전략을 채택한다. 저장이나 보관 방법이 자연에서 정해진 것에 따를 수 밖에 없으니, 과다한 것은 마치 낭비처럼 되어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에겐 아주 대단한 저장 수단들이 많다. 그래서 잉여도 버려지지 않고 계속 남겨 둘 수 있다. 그것들이 버려지는 것은 많아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효능이 없다고 할 때이다. 사자는 먹이를 구하면, 땅에 묻거나 나무 위에 걸쳐 놓더라도 매우 짧은 시간에 처리할 여유 밖에 없다. 그것이 어떤 경우엔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아사로 이어지는 역설도 있지만,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즉시에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만큼 그러는 것이 최적이다. 그 덕택에 여분을 확보하는 생명체의 공급자가 되는 것이다.
2. 양화대교에서 짜장면 시키신 분! 사람에겐 그 가정이 무너지지 않는 한, 가장 강력한 저장 수단이 있다. '돈' 이라는 이 만능 창고는 무엇이든 바꿀 수 있도록 가치(물론 허구이다)를 보관한다. 언제든, 무엇이든 끄집어 내어 제시하기만 하면 교환해 준다. 이 전지전능한 도구는 과잉이란 게 없다. 결핍해서 욕망하는 게 아니라, 욕망해서 결핍해 진다. 전권을 가진 만큼, 생사여탈권도 이것이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가치없는 종이 조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오늘날에는 아예 물질도 필요없이, 숫자로 나타내어 보다 신속히 신용이리는 것을 과시한다. 썩거나 문짝을 비집고 삐져 나올 부피조차도 필요없으니, 영원한 생명을 유지한다. 신의 몸을 빌려 물신이 강림하는 것이다. 남더라도 2차 포식자에게 남겨 줄 몫은 거의 없다. 이 탁월한 보관 방법 덕으로 공생은 쪼그라 든다. 사나운 포식자들은 번식력을 더 왕성하게 길러, 하루 아침에도 억억거리는 알을 줍는다. 반면에, 주변을 맴도는 n차 생명들은 그저 원망스럽게 한 조각이라도 떨어지기를 바라지만, 냉동고 깊이 저장된 먹이는 숙성용이라면 모를까, 세균이 침투해 부패할 일이, 그래서 폐기할 일이 없다. 그러니 이 가엾은 생체들은 그 앞에 떨어질 지도 모르는 조각을 기대하며 맴돌고 있어 봤자 허사이다.
3. 빚 좀 갚으세요 돈과는 개념이 좀 다르겠지만, 회폐는 권력과 함께 일종의 채무였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전제로 피지배자에게 증여를 시행했다. 그러한 보상은 복종자에 대한 채무이행 확약인 셈이다. 그것이 충성을 맹세한 측 입장으로 보면, 지배자에 대한 청구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의 내용이 역사속으로 파묻혀 형식만 남았을 뿐이다. 지배 권력인 국가는 국민에 대한 채무자이다. 국가가 가장 거대한 채무자임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그 번대급부로서의 권력은 본질을 잊은 채, 가장 큰 강제력을 행사한다. 일론 머스크는 약 395조원을 보유한 재력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연원은 어디서 나올까? 만약 그의 사업이 하루 아침에 몰락한다면, 휴지 조각 소멸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당장 그의 지갑에 들어 앉은 몇 천 달러가 전부일 것이다. 실수로 계정 정보를 삭제하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개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큰 빚쟁이인 것이다. 우스꽝스럽지만, 뉴욕의 지하철 노숙자가 가장 큰 부자인 것이다. 잘 곳, 탈 것이나마 제 옆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강한 채권자가 되면 될수록, 죽겠다는 곡소리가 나는 것인가? 채무자가 상환하기를 거부하니, 채권자는 죽을 노릇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