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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의 동시화

by justit

1. 모르는 척 슬쩍


취미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짐짓 있어 보이라는 듯, "독서인데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아, 그러시군요.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요!"하는 반응이 따른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대답과 반응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outdoor activity', 그러니까 집 바깥에서의 활동적인 것을 취미라고 이해하더라는 것이다. 그럼 독서는 뭐지?
취미가 아니라고 해서 특기는 더 더욱 아니고...
요즘엔 책 읽기도 참 힘들어 졌다.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고, 쓸 데 없이(?) 신경을 다른 곳에 기울이다 보니, 글을 읽을 여유가 없다. 서서히 생각의 고갈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 멋대로 글을 끄적거릴 착상이 붙어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여태껏 이해하든 못하든, 이 책 저책을 대략이라도 읽어 놓은 게 글쓰기의 바탕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도 비슷한 글을 많이 쓰다 보니, '이게 저번에 어디다가 올린 내용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에라 모르겠다. 근간은 비슷하지만, 다른 맥락이니까!' 하는 자기 위안으로 계속 써 내려 가는 것이다.


2. 그냥 쓰는 겁니다. 용감하게!


글을 잘 쓰고 잘 읽는다는 것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은 부족한 생각을 보충하거나 헝클어져 있는 상념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글은 확실히 말보다는 지체 현상을 겪는다.
말이야 무의식화 되어 있다고 하니, 전체 내용중에서 절제할 부분만 감안하면 즉시적이다. 그러나 글은 마음속의 것을 수월하게 곧장 담아내지는 못한다. 공중에 흩어지는 말보다는 여과 장치를 거치듯
다듬어 진다. 그리고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니, 함부로 표현하기도 주저하게 된다. 내뱉어진 말이야 기억에 없다고 얼버무리면 한결 수월해지지만, 글은 위조.변조를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내가 이 정도의 깊은 사유를 할 줄 안다는 가소로운 과시 심리를 속일 수는 없다. 반면에 그런 엉터리 주장이나, 유치한 생각을 드러낸다는 질타도 각오해야 한다. 또 의도와는 달리, 뜻 밖의 생각지도 못한 저항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 온 몸으로 부딪히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러하고 있다.

3. 저수지를 향해


글을 읽는 측면은 한결 나은 편이다. 암호 코드를 해석하는 듯한 어려운 책들도 있지만, 단 한 줄에서도 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혹은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이 이런 내용과 맥락이 닿는 것이라는 것을 가끔 깨닫는다. 그래서 양자는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가 보다. 읽는 것이 쓰는 것이고, 쓰는 것이 읽는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통하는 가 보다.
그래서 다시 읽는 것으로 돌아가 봐야 하겠다. 이 무수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읽는 것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더욱이, 행간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쾌재를 부를 만큼의 건져냄이다. 물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두레박이 필요하다. 퍼 올린 물을 어디에다 쓰느냐는 다음 문제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용처는 또 정해질 것이다. 물이 가득하게 저장된 도서관이라는 저수지를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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