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엘 가려고 집을 나섰다. '어, 이런!' 전기점검으로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9층에서 바닥 까지 낑낑거리며 계단을 탄다. 하필 오늘이람! 목적지에 닿고 보니, 주차할 곳이 없다. 두 바퀴를 돌다가 다음에 와야 하겠다 싶어 발 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올라가야 한다. '헉헉!' 간신히 집에 당도해 앉았다. 컴퓨터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 지을 요량으로 무심결에 그 앞에 앉았다. '아, 정전이지!' '공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전기도 무의식 범주에 드는구나!' 이런 것들이 일상에 얼마나 많을까? '왜?'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즐비하다. 의식하고 사는 것들도 이런 상황을 닿으면 불현듯 '그렇지' 하는 것이다. 사람 간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옆에서 인내하며 동일한 과잉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아내가 있는 데, 일이 계획한 데로 잘 이어지지 않으면 괜히 역정을 퍼붓는다.
2. 마이 뭇다 아이가! 드물게(?) 반성하지만, 매번 그 화풀이는 아내에게로 향한다. 갑자기 멋쩍어지면 맥락도 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속으로 적대감이 생겼는 데 순순한 반응이 나올까? 아마 모르긴 해도, 조직생활을 하던 때의 그 속에서의 평판은 가정 내에 침투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어머, 좋으시겠어요! 주변도 잘 돌봐주시고, 항상 친절하신 데 가정생활은 안 봐도 척이죠 뭐!' 뜨거운 태양 아래를 들락거리며 무척이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집에서는 꼼짝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처럼 활동이 일이 되면 그것은 무언의 대가를 계산하게 되고, 차라리 동종업자를 부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집 관리는 외면한다. 세월이 지난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아내라는 존재는 옆에 있어도 삭제되기 쉬운 존재이다. 결혼을 전제해서는 온갖 트레이닝(?)을 다 겪으면서 그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그 후로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3. "밥 줘! 맡겨 놓은 밥 말이야!"
곁에 늘 있긴 하지만, 크게 의식되지 않는...(아! 이 노릇을 어찌 감당하려고...) 어쩌면 대놓고 보라고 쓰는 것일 테니, 여기서나마 깊은 참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도 올해면 환갑이다. 이젠 세월의 더께가 스쳐 지난 것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역정을 잘 받아내며 지내주고 있다. 애들이라도 같이 곁에서 지내면 좋겠지만, 모두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아마도 그곳에 정착하기가 보다 큰 확률일 것이다. 그러니, '남의 편'에서 응원군이 없다. '쩝' 이 거듭 갱신되는 반성 아래에서, 오늘은 용감하게 무의식을 의식으로 돌려세워봐야 하겠다. "밥 줘! 맡겨 놓은 밥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