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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지 않기

by justit

1.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문서나 녹취, 증인을 둔다거나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
형식은 많이 제시되겠지만, 실질 내용면으로 들어가면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이행하겠다고 확신을 전달하지도 않았음에도 그게 약속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건가?
그런데 그것만큼 확정적인 게 있을까?
오죽 약속이 잘 깨지면 맹약, 피로써 맺은 언약 같은 게 있을까?
또 낭만적으로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신뢰를 완성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믿고 기다려 보면 시한 없는 대기가 된다.
무한 불신이나, 자조가 따라붙으면서 실망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은 어떤가?
가장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사흘을 넘기면 어느 정도의 가능성으로 뒤바뀐다고 보는 것일까?
작심삼일이니 하는 것을 보면 그게 수리적 한계치인 듯하다. 우스꽝스럽게도, 이는 매일의 자기 갱신을 가져온다.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금주다.'

2.
그래서 금주 선언은 술 집에서 많이 이뤄진다.
"술 끊는 것에 대해 솔 한 잔 하면서 생각해 보자고!"
그런 장면은 매번 반복될 것이다. 매일이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것은 아마 생을 마감해야 지켜질 약속일 것이다. 그러니 약속을 하지 않는 게 최상의 신뢰를 주는 일이다. 그럼, 이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일을 계속 허용하라는 말인가?
반어법 같은 이 말장난에 환호하란 말인가?
아마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것이니 함부로 섣부른 선언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리고 일단 내뱉었으면 실망시키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던지기 쉬운 말 한마디에 믿지 못할 존재로, 관계를 파괴한다. 어차피 믿지 못할 존재여서, 결과도 그렇다면 다소 덜한 편이다. 그런데도 지키지 않을 약속은 공중에 떠돈다. 속이기도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되어 온 만큼, 지상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플래시보 효과처럼 허위가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궁극은 신뢰일 것이다.

3.
우리는 무수한 약속에 속아 왔다. 조금만 버티면 큰 보상을 줄 것이라든지, 현재의 악한 상황을 개선시켜 줄 것이든지...
그러면서도 그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없던 일이 된다. 증거를 디밀어도 소용없다.
이행 불능임을 서로가 알연서 스스로를 속인다.
그러지 않으면 한 발지국도 진척하기 어려위진다.
매번 겪는 일상에, 서로를 불신한다면 그것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된다.
"귀하가 제시하는 지폐가 위조가 아님을 어떻게 믿죠?"
"내가 지불하는 돈과 상품이 안전하게 교환될 것이란 걸 어떻게?".........
약속은 어차피 깨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 전제하에서만 우리는 약속할 수 있다. 협약은 피를 쏟아내며 깨진다. 맹약은 바위가 무너지면서 흐트러진다.
그 강도에 따라 무너지는 것이 더딜 수는 있지만, 그만한 굳건함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약속하지 않는 약속은 얼마나 지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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