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은 상징 투성이다. 상징계가 펼쳐지는 현실이니 당연한 사리이다. 양화대교는 이전에 어떤 것을 암시하고 서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자이언티 노래를 들으면 60년대 출생, 이 땅의 아버지가 있다.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밤새 택시를 몰았을 그는, 지식이 전화할 때마다 늘 그곳에 있다. 질곡의 시절을 뚫고 나온 세대에겐, 이제 먹고 살만 할 텐데도 여전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흘러간(?) 지오디 노래에서도 어머니는 짜장면을 싫어하시는 존재이다. 자식들에게 모처럼 그것을 사주려고 치면, 언제나 돈이 부족했을 것이고, 그래서 "엄마는 왜 안먹어?" 라는 질문에 얼른 다른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또 엄마는 항상 고등어를 구워 올리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머리 부분만 발라 먹었다. "난 대가리가 맛있어!" 눈치 없는 자식은 "왜 엄마만 맛있는 것 먹느냐?"라고...
2. 부모라는 상징은 그것이라기보다는, 생생한 현실이다. 실재가 상징계의 틈을 뚫고 침투해 있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가장 낮게 대하는 존재들이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냅 둬! 내가 알아서 한다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제일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이다. 무슨 말 못 할 고민거리라도 있을라치면, 친구 정도에서나 토로할 일이지, 부모는 순위에도 들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이나 환경, 생활 태도 따위가 가장 비슷하니 또래를 찾고 위로를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나 접근한다. 늘 강한 저항에 부딪히지만, 그것도 부모 몫이라 여기면서. "이젠 그만 쉬세요. 제가 모실게요" 나는 부모님께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독립을 이루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제 한 몸 추스리기도 버거웠다. "놀기 삼아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것이니 과히 신경 쓰지 마"
3. "괜찮아, 아픈 데 없이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 부모님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다. 한 번도 자식들에게 솔직한 적이 없다. 진실을 말해도 의심스럽다. 나는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아이고 나 죽네! 발을 삐끗해서 삐었더니, 죽을 것 같아!" 애들에게 이런 농담을 하지만, 여전히 양화대교에서의 택시 드라이버는 "아직도 30년은 끄떡없는 전문 운송인이다.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는 여전히 짜장면에 알레르기가 있고, 갈비를 구워도 뼈에 남은 살점이 가장 맛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자식들 다 먹이고는, 엄마는 뒤돌아 앉아 등심을 구워 드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이며 이기적이다!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데, 너무 정직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