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명절을 맞아 귀향객들로 꽉 찬 열차에서는 군용 칸이라는 특전도 없었다. 그래서 이동 통로에, 그것도 간신히 발을 딛고 설만큼 기차는 붐볐다. 입석 손님과 뒤엉켜 가는 그 열차는 정말 짐짝이었다. 모두가 숨을 쉬기도 어려운 그때, 한 지긋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런 콩나물시루 같은 데에서 군바리도 실으니 더 복잡 하지!"
나는 그 소리를 듣고는 모른 척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방금 그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저씨는 군대 안 나왔어요? 만약 제대로 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얻다 대고 군바리가 어떠니 지껄이는 거예요!"
그의 기세에 눌리고, 주변의 날 선 시선을 의식했던 지, 그 아저씨는 사람들을 비집 고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운 그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나 싶었지만, 그 정도 언성으로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죄송합니다. 열이 뻗쳐서.,."
"아냐, 그럴 만도 하지. 나한테 미안할 건 없고, 오히려 속 시원한 데 뭘!"
그렇게 기차는 헐떡이며 달리다가 중간에 그를 토해냈다.
5.
그는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집을 비운 상태였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그는 자기가 외면당한 화풀이로 몇 가지 거실에 놓인 물건을 손 본(?) 모양이다.
"그러다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제가 그랬다는 걸 알면, 쫓아 오라죠. 하룻밤에 내팽개친 마당에..."
다행히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4년간의 애정이 단 며칠 만에 떨어져 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6.
어째 저째 나는 2년 하고도 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2학년 때까지 교련수업을 이수하면 3개월의 군 생활을 차감해 주던 시절이었다. 나는 군 생활을 마치자 말자 국가고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곧장 다시 휴학에 들어갔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느라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필 88 올림픽이 개최된 해라, 거기에다가 다시 애국적 행위(?)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 경기만'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