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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 잃기

by justit

"소리 안 들려요?"
자전거 도로와 보도가 반씩 나눠진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바닥이 약간 울퉁불퉁했는지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그때였다. 그래서 몸을 돌려보니 바로 뒤에 조그만 수레를 매단 전동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그리고는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이 자전거에 앉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
미처 대응할 틈을 주지 않고는 그가 내 곁을 지난다.
불과 몇 m를 진행하고는, 이번에는 어떤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해댄다. 뒤에서 쳐다보노라니, 나와 똑같은 내용의 역정을 받아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상한 사람이죠?"
"네, 길을 지나야 하겠으니 좀 비켜주세요 한 것도 아니고..."
그랬다. 자전거를 몰고 가는 사람이 좀 비켜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으면서, 단지 바퀴가 평평하지 않은 바닥을 접촉할 때나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을.
물론 자전거 길이 구획되어 있으니 인도에 대해 무슨 주장을 내뱉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 본래는 보도를 편의상 나누어 자전거도를 허용한 것이니 우선권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실상은 자전거 전용도로이지 않은 한, 그것은 자전거도를 설치한 반사적 이익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자전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반발할 것이다. 마치 일반도로도 사람의 이동에 기여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고, 그러면 차외에 누구든 도로 한복판을 걷겠다는 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고.
여기서 보호대상은 사람의 안전이다. 일반도로에서 무단횡단 따위를 금지하는 것은 그만큼 신체에 커다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단지 신속한 이동만을 우선한다면 그렇지 않은 도로는 수두룩하며, 매번 그 권리를 청구하는 소송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한 목적, 도착 예정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속열차나 항공을 이용할 때는 그런 약속이 지정되어 있으니 당연히 문제시되지만 말이다. 그것이 권리라고 하면 그렇다. 그런데 일반도로는 그렇지는 않다. 목적 시간 내에 도달 여부는 오직 도로 상황과 운행자 역량(?)에 달려있다. 상급 도로인 고속도로에서도 말이다.
그런데 열차나 항공편은 그 전반을 운행사가 장악한다. 책임은 의당 운행사 쪽으로 귀속될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자전거와 보행로가 맞붙어 있는 곳에서 인명사고가 나면 자전거 운행자에게 더 큰 책임이 따를 것이다.
어쨌든 그런 법적 책임이나 권리 같은 이야기를 접어 두면, 사람이라는 게 점점 길을 잃는다.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설치된 도로 외에, 한편에 자전거 도로, 그것도 모자라 인도까지 반으로 쪼개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리고는 그냥 걷는 사람이 푸념을 받아내야만 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뜻은 아니지만,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있다.
정해진 길이 없으면 아예 잃을 길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냥 터벅터벅 걷다가 길을 찾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다. 요즘에야 길 찾는 일이 각종 앱의 힘을 빌리면 별 대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같이 공간 개념에 어두운 사람에겐 여전히 곤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애초 목적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비슷한 곳을 들렀더니, 뜻밖에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이런 우연에 기대어 살 수는 없지만, 이처럼 잃은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그 자전거 운행자와의 시간은 불쾌했지만, 이 사소한 일을 한번 생각해 보는 뜻밖의 시간도 가지지 않았는가!
단 여전히 "소리 못 들었어요?"(왜 내 길을 막아. 다치면 네 손해지...)하는 유보된 책임 할당과 '괜히 길을 나섰나'하는 상실감은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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