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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Jul 27. 2017

자식덕질

어쩌겠니. 엄마가 이래 생겨먹은 걸.

본디 나는 SES의 덕후였다. 천상에서 막 강림한 요정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SES 언니들을 보자마자 홀랑 어린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3사 음악방송 본방사수는 물론이요, 등하교길엔 테이프가 늘어져라 노래를 들으며 알 수 없는 영어랩까지 통째로 달달달 외워버렸다. 자다가도 툭 치면 노래 한 구절이 튀어나올 정도로 내 사랑은 작지만 열렬했더랬다. 돌이켜보건대 그것이 덕질 역사의 시작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언니들을 향한 사랑은 사그라들었다. 그 즈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god의 육아일기'. 잘생긴 오빠야들 다섯이 아기를 어찌나 살뜰하게 잘보는지, 14살 짜리 중딩으로선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급 폴인럽한 나는 불 나는 데 휘발유를 부은 듯 폭주기관차처럼 가열찬 덕질을 시작했다. 매달 새로 나오는 모든 종류의 잡지와 사진들을 사 모으고, 새 앨범이 나오는 날엔 새벽같이 레코드샵으로 달려가 씨디 2장과 테이프 2개씩을 사들였다. (각각 감상용과 소장용. 오빠들의 음반판매량을 위해 더 많이 사들이고 싶었지만 당시 중딩의 주머니사정으로 그 이상은 무리였다.) 당시 인기있는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드림콘서트는 또 어떠했는가. 오빠들이 무대에서 보시기에(라곤 했지만 사실은 다른 가수의 팬들이 보기에) 하늘색의 영역이 한 점이라도 더 많아 보일 수 있도록 온갖 하늘색템으로 중무장하고 참석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윤 모 오빠의 부모님이 운영하셨던 갈비집에 수박 한 통 사들고 찾아뵙는 것 역시 그들의 팬이라면 응당 통과해야 할 의례 같은 것이었다.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오빠들의 게릴라 콘서트(목표 인원을 달성하지 못하면 처참하게 실패를 맛보아야 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잔인무도한 프로그램)를 성공시키기 위해, 학원가는 척 가방을 메고 원정 팬질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안에 엄마 있다, 호박아.


그 이후로도 덕질은 계속되었다. 스무살 땐 SS501이라는 새로운 오빠들에게 빠져서 학교 수업을 땡땡이 쳐가며 너갱이를 놓고 따라다녔고, 취준생 땐 'The Office'라는 미국 드라마에 심취하여 집에만 틀어박혀 정주행과 랜덤플레이, 배우들 필모 훑기, 로고가 새겨진 굿즈 공구 등등 내일이 없는 듯 덕질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싶지만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빠졌던거겠지..)


이런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덕질 중의 덕질이라는 자식덕질은 그야말로 개미지옥. 나만 바라봐주고 나에게만 웃어주는 으뜸이라니! 매일 매일 귀여움을 최고치로 갱신하는 아가 때문에 나는 객관적 판단력이 흐려진지 오래다. 윗입술에 붙은 밥풀을 아랫입술로 오물오물 떼어내 먹는 모습,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옹알이를 하는 모습, 박수치는 나를 보곤 따라서 박수치는 모습 등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미친 사랑스러움에 고된 몸과 마음에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요 며칠 사이에는 '아빠'를 발음하기 시작했는데 작은 입을 옴짝달싹하며 발음하는 모양이 어찌나 귀여운지 내가 아빠가 아닌 것이 한탄스러울 정도다. 사소한 장면들도 나노 단위로 캡쳐해두고 싶은 이 마음은 과연 덕후의 그것이라 부를 만 하지 않은가.


디뮤지엄 Youth 전시 중에서, 뜨끔!


앞으로 호박이에겐 열병같은 사춘기도, 무시무시한 중2병도 찾아올 것이다. 내 맘같지 않은 순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가 나로 하여금 식었던 덕후의 피를 다시 펄펄 끓게 했음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순수한 기쁨을 맛보게 해주음을 결코 잊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기억들만으로 평생을 고마운 마음으로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쁨의 시절'을 나는 지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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