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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Jul 11. 2017

나만 기억하는 시간

넌 어차피 기억도 못하겠지.

검색창에 '날짜계산기'를 치면,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오늘이 며칠째인지를 계산하여 알려준다. 불과 얼마전까지 나는 하루도 빠지지않고 호박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는가검색했다. 그렇게 쌓여가는 아기의 날짜들이 곧 나의 달력이었으니까.

오늘로 태어난지 275일을 맞은 호박군.

아기와 단 둘이 보내는 나날들은 마치 슬프고 상투적인 로맨스 영화같았다. 날마다 밤낮으로 절절한 사랑공세를 펼치지만 상대의 기억엔 그 시간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그런 뻔한 줄거리의 영화. (그런 영화를 지나가면서 몇 개 본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질 않는다. 드류 베리모어가 나왔던 '첫키스만 50번째'가 아마 그런 류의 영화였던 것 같다.)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살을 부비고, 눈을 맞추고,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수다를 떨며 나는 때때로 공허했다. 오직 나만 기억할 그 시간들이 짠하고 쓸쓸했다. 날아가지 않게 꽁꽁 붙잡아두고도 싶었고, 어서 그 외로운 시간들이 지나가길 바라기도 했다.

달력은 특별히 숫자가 큰것으로 골라 걸어두었다.

그래서 더더욱 아기의 날짜를 헤아리는데에 매달렸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 시간을 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소중한 누군가와의 기념일을 되새기듯 매일 늘어나는 날짜들을 꼭꼭 씹어 마음에 삼켰다. 매달릴수록, 힘이 들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게 갔고, 정신차려보니 그 사이 내 달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힘을 빼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호박이가 태어난지 80일 경이었다.

이번달도 부디 무사히!

이유식 만드는 날, 검진받으러 가는 날 등등 나의 시간은 여전히 아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사이 나의 시간도 잊지 않으려 한다. 3일에 한 번은 글 쓰는 날.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반납 하는 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하는 날. 친구들 만나는 날. 아기에겐 잊혀질 날들이지만 나에겐 절대 잊지못할 시절이니까. 아기와 함께 보내는 네 번째 계절이 뜨겁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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