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에게 말을 하다
드디어 얘기를 하기로 결심한 일요일이 왔다.
그는 출근했고 난 침대에 누워 어제를 기억해 보았다.
어젯밤 나는 친구를 최대한 늦게까지 만나고 자기 전 그와 잠깐 마주했다.
퇴근 후 약속을 마치고 집에 있는 그를 내가 과연 포커페이스로 잘 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를 보는데 이상하게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 카톡에서 성매매 후기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내 인생을 덤프트럭으로 쳤던 그 X자식은 따로 내 머릿속에 있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연애까지 합쳐서 3년 가까이 믿어 온 너무 착하고 다정했던 사람이었다.
뇌에서는 내 눈앞에 있는 그와 나를 상처 주고 내 인생을 망가뜨린 그가 같다는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성매매하는걸 영상으로 봤으면 그 X자식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랑 동일하다는 걸 뇌가 인식했을까?
이런 어이가 없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만약 뇌가 그렇게 인식을 했다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저 사람의 손길이 너무나 무서웠을 거고 당장이라도 폭발해서 싸대기를 때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일상얘기를 하고 서로 약속에서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난 씻으러 갔다.
혹시라도 그가 눈치챌까 싶었는데 눈치채지는 못한 듯해서 다행이었다. 약간의 분위기는 느꼈는지 피곤하냐고 물어봐 그렇다고 대화한 후 빨리 자야겠다고 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어색하고 불편해서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이 되고 그는 출근을 했다.
나는 그가 돌아오면 더 이상 돌이키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그 일을 벌이기 위해 준비해야 했다.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걸 그냥 묵인하고 지나간다면 남은 나의 인생이 불구덩이일 걸 알기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바로 잡았다.
이제 일을 끝내고 돌아온다는 그의 전화에 힘없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 물어 아프다고 하고 핑계를 대면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가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원하는 것들, 즉 합의서에 쓸 내용들에 대해서 종이에 썼다.
또다시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순간이었다. 변호사를 만나러 가기 전처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1. 당장 이 집에서 나갈 것
2.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이 집은 놔두고 차와 본인의 물건만 갖고 헤어질 것
3. 성매매로 인해 만약 내가 성병에 걸렸다면 치료비를 부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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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요구사항에 대한 내용들을 쓰고 그에게 이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끝낸다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라 말할 계획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표를 앞두고 있는 그런 두근거림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아주 묘했다. 드디어 포커페이스를 하지 않고 다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하니 뭔지 모를 쾌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녹음을 준비하고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어플도 깔아놨다. 그리고 만약 그가 나가지 않아 내가 나가야 한다면 증거가 있는 핸드폰을 포함해서 중요 정보들이 있는 것들을 모두 함께 짐을 싸놨다. 그리고 화장실에 숨겨놓고 만약 그가 폭력적으로 나오면 화장실로 도망가 신고할 생각도 했다.
이 모든 걸 준비하는데 어이가 없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해치는 존재가 아닌 보호해 주는 존재였다. 서로를 아끼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그걸 보듬어주고 같은 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해자인 그, 피해자인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모든 상황들을 상상하고 대비하고 있다. 철저히 혼자 그 가해자와 대면할 준비를 해야 했다. 누군가 나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들어와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식탁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의 얼굴은 도저히 볼 수 없어서 그냥 식탁을 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하는 말들이 엄청 고민하고 말하는 거니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일단은 맞다 아니다로 얘기해 줘. 작년 7월에 ㅇㅇ에 가서 성매매했잖아 “
라고 약간의 떨리는 목소리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
라고하며 부정했다.
역시나 부정하며 나오는 그에게 나는 심증도 아니고 정확한 걸 알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겠지만 거짓말하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첫 번째, 가족에게 알리는 것.
두 번째, 경찰에 신고하는 것.
세 번째, 블라인드든 온 세상에 다 밝히는 것.
이 세 가지를 모두 참고 말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거짓말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고 많은 걸 알고 있으니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얘기를 이어가니 그가 하는 말은
“했어.
근데 마사지야.”
라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마사지는 괜찮은 건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어이가 없었지만 그거에 대해 따져 묻고 화내는 순간 화제가 전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자세한 걸 말해야 사실대로 말할 거냐며 물었다.
그는 기억이 안 난다며 “작년 7월? 아닌데.. “
라며 마치 하긴 했는데 그때가 아닌데라는 거처럼 너무나 어이없는 반응을 하다 결국 맞다고 인정했다.
드디어 그의 자백을 받아 다행이다 생각이 들면서 허무하고 이제부터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진짜 상대와 싸움을 해야 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오기도 하면서 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