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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킵고잉 Nov 23. 2023

#6. 흔들리다

외로움이 두려웠다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어떻게 되든 우리의 결론은 헤어지는 걸로 똑같다고, 그건 당신이 성매매를 하는 순간부터 정해진 것이라 말했다.

아까 준비했던 종이를 보여주며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면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끝내겠다고 했다.

그게 당신이 책임지고 이 일을 끝내는 거라고도.


그는 내 옆으로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정말 미안하다며 원하는 대로 할 테니 헤어지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헤어지는 걸 목표로 3일간을 참고 드디어 터뜨렸는데 헤어지지만 말아달라고?

전혀 나에게는 설득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믿음을 잃은 사람과 같이 살 수 없었다.

이 사람과 같이 살아도 되겠다 싶었던 이유 중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엄청난 사랑보다는 믿음을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늦어지기 전에 얼른 오늘부터 지낼 곳 알아보고 짐을 싸고 나가고 주말에 포장이사를 불러서 물건들을 다 가지고 나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확고한 나의 옆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없냐는 그의 말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안 상태로 더 이상 당신을 믿고 살 수 없고 만약 그냥 이대로 같이 산다면 우리 둘 다 지옥에서 살게 될 거라 말했다.

이혼하고 해도 지옥이겠지만 같이 산다면 그보다 더 심한 지옥일 거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 무릎을 꿇은 상태로 헤어지지만 말아달라 하고 나는 나의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울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잡고 말하기 위해 에너지를 써서 그런지 머리가 하얘지고 힘이 빠졌다.


그렇게 축 쳐져서 누워있는데 그는 짐을 싸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가만히 두면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일어나 그의 여행캐리어를 꺼내 그의 방에 놔뒀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빨리 1주일치라도 챙기라고 했는데 그는 멍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아 옷방으로 가서 그의 속옷을 챙기는 순간 그제야 그가 자기가 하겠다며 일어났다.


나는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한참 울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 그가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와서 보니 옷방에 있는 자신의 옷들을 모두 자기 컴퓨터방에 쌓아 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자기 물건을 컴퓨터방안으로 모두 치우고 눈에 안 보이게 할 테니 이 방에서 출퇴근하게만 해달라. 그냥 조용히 출퇴근하고 이 방에서 이불 깔고 자겠다라며 부탁했다.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상상도 못 했던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미워해도 모자라는데 옷이 쌓여있는 산더미에서 쭈그려서 자는 그의 모습을 상상이 되며 마음이 아팠다.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짜증이 났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너무나 확고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번 상상해 봤다. 이 일을 덮고 살다 보면 나중에 웃으면서 농담으로 삼을 만큼 별일이 아니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고 갑자기 두려움도 몰려왔다. 외로움의 지쳐서 힘들어했던 과거가 생각이 나며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이 나고, 정말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라며 자신이 없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나보고 늘 독립적으로 살라는 엄마와 언니의 말에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내 마음속 깊게 내가 바라는 인생의 행복한 모습은 돈, 명예, 커리어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 맞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하는 게 꿈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한 모습을 한 장면 떠올린다면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을 때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거실에서 남편의 무릎베개를 베고 옆에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거라고 했었다. 그때 그 말을 하고 나 스스로 스스로 너무 놀랐다. 엄마와 언니의 독립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그게 목표라 생각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그런 거였구나. 나 혼자도 재미나게 살아나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마음은 누군가와 재미있게 지내는 걸 원하는 사람이구나.

그런 마음속 깊은 나의 욕구를 인정했지만 그건 정말 이상적인 꿈이고 현실로는 이뤄지기 힘들구나라고 포기할 즈음에 만난 사람이 저기 주저앉아있는 그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주는 사랑에도 100% 기대려 하지 않고 다 믿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성적인 끌림보다는 믿을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술자리가 회식 빼고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아예 집에만 있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냥 밖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거보단 집에서 쉬는 걸 좋아했고 엄마랑 여동생을 아끼며 연락도 자주 하는 딸 같은 아들이었다. 그래서 만약 이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와의 관계가 권태로워서 다른 이성에 눈길을 주거나 아니면 약간의 예민함이 있어서 이게 트러블이 되지 않을까 정도만 의심해 보았다.


특히 여동생은 페미니스트 성향에 남자를 믿지 못해 연애 한번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이 부분에서 문제가 될 일은 상상도 못 했다. 나한테 다정해서 믿은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들을 실망시킬 짓은 안 하겠다 싶었기 때문에 믿음이 생겼다.


남편의 성매매로 헤어졌다고 했을 때 연애 때는 왜 몰랐냐며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들에게 기분이 나쁘고 마치 갑자기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왜 그걸 못 피했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만 이해는 한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핸드폰 비밀번호부터 모든 비밀번호를 공유했고 그는 나에게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마음껏 쓰게 해서 나도 가끔 검색기록이나 여러 흔적들을 찾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될만한 게 없었고 진짜 그 흔적을 찾으려면 내가 의부증 환자처럼 캐야지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왜 진작 내가 이걸 몰랐을까라는 후회는 하나도 없다.


아무튼, 나는 내가 후회할 행동이 하나도 없었고 마음도 확고했기 때문에 흔들리는 나 스스로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만큼 나에게 외로움이란 게 무서운 존재인가 싶으며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추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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