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감싸는 여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큰 오차 없는 시간,
매번 같은 수고의 인사말,
역시나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에 멈춰서는 버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의 변화들이 눈에 든다.
한결 더 가벼워진 모습들
옷에 걸쳐진 천 가지는 줄었지만,
저마다 표정은 무거워진 느낌.
겨울을 지나 다시 한번 계절을 피부로 와닿는 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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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린 배경을 좋아한다.
그러한 이유로 ‘밤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퇴근길에 오른다.
살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언제나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좁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난 여전히 피부를 감춘 채 걷고 있다.
마치 새로운 계절이 피부에 직접 닿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절은 나에게 본인이 왔음을 알린다.
‘여름이다’
옷을 고르며 애써 부정하던 나는,
몇 발자국을 채 걷기도 전에 인정하기에 이른다.
봄은 가버렸다고,
애정을 담은 눈으로 고른 옷가지들을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매정한 봄은 올해도 일찍이 떠나버렸다고.
나는 그렇게 봄을 지운 여름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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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하고도 반을 걸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작은 내방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순간 나를 반기는 이들을 마주한다.
‘여전히 봄이다’
여름이 몰고 온 습기는 봄이 남긴 꽃내음을 더 짙게 만든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여름은 봄의 마무리가 더욱 찬란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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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 인사는 비가 되어 내린 꽃잎이 땅에 닿을 때가,
옷을 바꿔가며 꽃을 피우고 지울 때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옷장을 정리할 때,
여름을 소개하듯 끝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나는 여름이 전하는 봄의 작별을,
봄이 전하는 여름의 인사를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