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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라소니 Oct 29. 2020

PM이 동료의 마음을 얻는 법

#일-3

“차라리 혼자 다 하는 게 낫지, 시키고 취합하는 게 더 힘들어요”

“평행선만 그리는데, 의견 조율해서 솔루션 도출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나는 PM(Product Manager)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 했었던 업무 성격을 생각하면 Product 보다는 Project Manager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PM을 하나의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기획-개발-론칭을 관통해서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직무로 정의된다. 누군가는 CEO처럼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마케팅의 꽃이라고 하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10년쯤 일을 해본 내 개인적인 의견은 ‘고문 기술자’에 가깝다. 뭔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같이 협업하는 리서처, 개발자, 디자이너, 영업 담당자를 쥐어짜서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표현이 더 와 닿는다.


  이 일을 하면서 에디슨에 빙의해서 창의력을 불 태울 때도 재미있고, 산으로 가던 의견을 조율하고 조율해서 최종 보고에서 통과됐을 때의 희열도 있다. 가장 큰 기쁨은 지지부진해서 이게 정말 양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했는데, 출시되어서 판매되는 것을 보는 순간이다. 식당이나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또는 TV에서 카메라가 1초도 안되게 훑고 지나가도 우리 회사 제품은 눈에 딱 들어온다. 그걸 아는 남편은 TV 볼 때마다, ‘어! 자기네 회사 꺼 아냐, 저건 진짜 비싼 거지?’라고 신나서 눈을 찡긋거린다.


  뭐가 가장 힘드냐고 하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내 맘대로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직위가 높은 것도 아니지만 의견이 다른 실무자뿐만 아니라 타 팀장님/실장님까지 설득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대학생 시절에 캐릭터가 정말 뚜렷한 다양한 전공자들끼리 모여서 하는 팀플은 너무 힘들어서 암 걸릴 뻔 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지 않나. 그런 짜증 나는 팀플을 하루에도 3~4개씩 돌리는 느낌이구나 싶을 때가 많다.


  짬이 지금보다 더 낮았던 시절에는 개발자 설득하는 게 힘들어서 일주일 넘게 자료를 찾고 또 찾아서 보란 듯이 회의 석상에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쓱 훑어보고도 해당 기술과 소재의 장단점, 예상되는 문제점까지 상세하게 짚어 내는 것을 보고는 정말 괜히 기술자가 아니구나 하는 존경심이 생겼다. 비슷한 맥락으로 디자이너에게 아이디어 설명하겠다고 이틀을 끙끙거려서 그림판으로 열심히 끄적거린 걸 들고 갔다. 무심하게 설명 조금 듣더니 스케치로 구조와 사용 씬, 설계에 고려해야 하는 요소까지 끌어내는 모습에 물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여전히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개발자의 전문성에 대한 질투 아닌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랑 같은 팀으로 일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겨질 때가 더 많다. 혼자서 끌어안고 조물딱 거렸으면 잘해봐야 세발자전거 정도 만들었을 텐데, 전문가들과 협업하니깐 최신식 오토바이 하나가 뚝딱 조립된 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는 나는 점검해야 할 주제와 이슈를 먼저 제시하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 과정은 너무 번거롭고 수고가 많이 들지만, 협업을 통한 결과물은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 박람회에 참여하기 어려우니 온라인상에 공개된 자료만 참고해서 3일 만에 해외 전시회 보고서를 완성하라는 미션을 받았었다. 다행히도 혼자 쓰라는 건 아니고 상품기획자, 디자이너, 리서처, 개발자 4명이 멤버로 구성이 되었다. 비슷한 멤버로 구성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람회 보고서도 각자 재능을 살려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해야 할 범위를 한정하되 통일된 양식을 배포 한 다음, 각자의 관점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함께 리뷰를 했다. 분명 같은 내용을 서치 하는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 놀랐다. 이후에는 각자 주요 브랜드 2-3개씩을 맡아서 네 명이 합의한 카테고리(제품, 디자인, 트렌드, 기술) 별로 정리했다. 그것만 취합해도 엄청난 분량에 잘 정리된 전시회 보고서가 뚝딱 나왔다. 출장 보고서를 여러 번 써봤지만 역대급으로 효율이 좋았어서 기억에 남는다.

 

  물론 협업의 결과가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말 팀워크도 좋고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었던 프로젝트도 ‘응 고생한 건 알겠네. 이후에 더 여유가 있으면 발전시켜보도록 하지’라는 피드백만 남아서 좌절하기도 했다. 또 상품화 컨펌을 받는 보고를 할 때는 의사결정권자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금방이라도 될 것 같던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개발 우선순위가 하위권이라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몇 개월간 치열하게 토론하고 으쌰 으쌰 하던 멤버들이랑 끈끈한 유대감이 있어서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회사가 친목을 다지는 동호회도 아니고 성과가 좋아야 팀워크도 인간관계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맞다. 개인적으로는 회사 일이라는 게 시스템으로 굴러가지만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같이 일하는 멤버들의 마음을 얻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PM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점심시간에 차도 자주 마시고 맛있는 밥도 자주 먹는다. 그리고 프로젝트 초기부터 배경과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고, 의견을 많이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신경을 쓰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업무 파트너에게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내편이 되어 줄 사람’이라는 신뢰가 형성되고 나면 조금은 일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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