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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Sep 13. 2021

천사 같은 전사 간호사 그리고 퇴원

Chapter 4. 정신과에 입원을 했습니다

10시 소등시간 전 9시쯤 되면 불이 꺼진 방이 하나씩 늘어나는데 나는 병동의 밤을 좋아했다. 모든 게 안정적으로, 또 보호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살벌한 바깥세상과 달리, 고작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바쁜 당직 선생님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환자의 안정을 위해 돌아가는 곳. 특히 간호사들의 전문성은 그동안 무지했던 내게 의료인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왔다.


하루에 몇 번씩 혈압과 컨디션을 체크하러 찾아오는 간호사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진심인지는 입원기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구호품을 구하기 위해 문을 부술 정도로 강한 전사와 같았다는 일화처럼, 정신과 병동의 간호사는 부드러움 속 강인함이 있었다. 특히 마음이 약해질 데로 약해져 보호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약을 삼키는지 뱉는지, 밥은 얼마나 먹는지, 자해의 위험이 있는 물건을 소지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모두 지켜보는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단호해진 것 같았다.

 경우에는 자의 입원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한 개방 병동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병동이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자살 기도를  환자나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들이 곧장 병동으로 오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환자로 정신과 병동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곤 했다.


한 날은 약물 자살을 시도한 아주머니가 위 세척을 마치고 병동으로 실려왔다. 정신이 없는 그 아주머니를 간호사와 테크니션 다섯이 붙어서 옷을 갈아 입혀 입원 준비를 시키고 침대에 눕히기까지 병실은 한없이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어서겠지만 숙련된 전문가와 같은 간호사의 모습에 존경심까지 들었다. 다만 자살을 시도한 환자의 가족이 찾아오면서 잠시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자살했다면 자살에 성공했다면 어떤 모습이 됐을지 상상이 되기도 했다.


잠시 후에는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호전되어 온 할머니가 끊임없이 망상을 내뱉었다. 간호사를 크게 불러 찾은 후 “여기 가스 나오잖아. 나 죽으라고 가스 피웠지?”라고 호통 치는 식이었다. 내가 놀란 건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애교 한가득한 목소리로 “따뜻하라고 틀어놓기는 했쥬. 여기 나쁜 곳 아녜요”라고 받아치는 간호사였다.


온갖 걸로 생떼를 써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가 나가자 할머니는 마침내 조용해졌고 “나 빼고 다 가버렸네. 가버렸구먼”하고 중얼거렸다.


할머니와 아주머니, 그리고 알코올 중독 언니까지 한시도 쉴 틈 없이 간호사를 불러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주한 간호사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로 안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내 머리는 지금 병동이 응급상황이라고 인지하게 됐다.


입원 첫날에나 그렇지 조금 지나면 잠잠해진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위로에도, 분주한 분위기에서 나는 가슴이 뛸 정도로 불안했다. 분위기가 잠시 지속되자 가뜩이나 불안정한 상태인 나는 퇴원이 간절해졌다.


자의입원이나 퇴원일은 결정되지 않았는데 퇴근한 주치의 선생님 대신 당직 선생님에게 의뢰해 서둘러 퇴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주 동안 천국에 온 듯 쾌적한 생활을 즐기던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갔다. 이런 상황이라면 병실보다 집에 있는 것이 더 안정적일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나중에 외래진료를 받다가 그때 C전공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서둘러 퇴원하느라 인사를 못 해 쪽지를 남겼는데 C 선생님은 전화까지 주시려다 잘 지내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참았다는 말을 하셨다. 환자와 선생님은 언제나 내 쪽의 짝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마음만으로 감사했다. 만약 그런 전화가 실제로 왔다면 나는 황송하고 감사하고 놀라워서 기절하지 않았을까.


 또한 C 선생님은 그때의 급 퇴원 결정을 도리어 축하해주셨다.

 “괜차나님, 잘하셨어요. 이제 참지 않고 실행할 거라 하셨잖아요. 힘들 때 바로 뛰쳐나간 건 정말 그렇게 하신 거나 마찬가지죠.”

도망치듯 가버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칭찬에 과연 나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조금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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