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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놀이는 매일 하나요?

예민하고 불안했던 엄마의 시간

by 소금라떼
바깥놀이는 매일 하나요?



아이의 유치원 입학을 결정해야 했던 그 해, 나는 소중한 연차를 아끼고 또 아꼈다. 바로 유치원 입학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고심 끝에 세 곳의 유치원을 방문했고, 설명회가 끝날 무렵이면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2019 개정 누리과정 해설서에 의하면,
교육부는 유치원에서 바깥놀이 시간을 정해진 시간으로 규정하지 않고, 유아의 놀이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루 총 놀이시간을 2시간 이상 확보하되, 바깥놀이 시간을 유연하게 편성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는 유아의 발달과 흥미를 고려한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루에 단 30분만이라도 밖에 나가 햇살을 쬐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ECE(Early Childhood Education) 자격증 변환하는 절차를 기다리며, 집 근처에 있는 몬테소리 프리스쿨에서 보조교사(Assistant Teacher)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매일 오전, 자유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어김없이 바깥으로 나가 자유롭게 원하는 놀이를 즐겼다. 그 시간만큼은 규칙도, 통제도 아닌 아이들의 ‘선택’이 중심이었다.


아이들은 햇살을 맞으며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모으고, 개미 한 마리에도 호기심을 쏟아냈다.
그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놀이’가 곧 ‘배움’이라는 걸 실감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바라는 유치원의 모습은, 그때 그 시절 밴쿠버에서 경험했던 장면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10월, 유치원 입학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많은 신도시답게 경쟁은 치열했다. 심지어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입학설명회' 참석 인원을 네이버폼으로 선착순 신청받았다. '설마 입학설명회를 못가겠어'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오픈 10분만에 마감되는 광클 실패를 경험했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도 아니고, 입학설명회를 못 간다고?"

충격이었다. 당일 오전까지 혹시라도 갑자기 못온다고 연락온 사람은 없는 지 확인했지만, 이미 그런 문의가 많았고 더 이상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그 유치원은 제외하고 총 세 곳의 입학설명회를 다녀왔다. 그때는 몰랐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그 유치원에 갈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는 걸.


유치원 입학을 위한 시스템은 이렇다.


STEP1. 우선모집

STEP2. 일반모집

STEP3. 추가모집



STEP1. 우선모집


1,2,3지망을 선택해 지원하면, 중복 합격도 가능한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셋 다 될 수도 있고, 나처럼 하나도 안 될 수도 있다. 친한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며칠을 고민해가며 고른 유치원이었건만... 결과는 1지망도, 2지망도, 3지망도 전부 불합격. 똥손도 이런 똥손이 있을까. 그제야 알았다. 이건 유치원 입시였다.



STEP2. 일반모집


우선모집 탈락 후, 약 2주간의 시간이 참 느리게도 흘러갔다. 확신에 찬 태도는 어디가고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다 떨어지면 영유라도 보내야 하나?' 뒤늦게 전화를 돌렸지만, 이미 정원은 꽉 찼고, 대기만 가능했다.


내가 원하는 유치원도 안 되고,

아무 유치원도 못 갈 수도 있다는 불안.

나는 결국 시스템을 원망했다.


"대체 왜 우선모집에 중복 합격을 허용하는 거야?"


누구는 셋 다 붙고, 누군 셋 다 떨어지는 이 불공정함에 분노했다.


일반모집이 시작되자, 우선모집 합격자들이 빠지고 남은 정원이 공개됐다. 내가 설명회조차 못 간 인기유치원은 단 1자리만 남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반모집에서는 1지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1지망이 합격되면

2,3지망은 자동 탈락된다.


1지망이 불합격되고

2,3지망도 이미 마감되었다면,

STEP3인 추가모집으로 밀려나야 한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입학을 확정한 후, 남은 TO를 기다려야 하는 긴 대기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안전한 1지망을 선택했다. 잔여 TO가 좀 더 많은 곳. 다행히, 아이는 일반모집 1지망에서 합격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과는 오후 2,3시경이었던 것 같다. 동시 접속자 폭주로 20-30분을 대기한 끝에 회사에서 결과를 확인한 나는 너무 기뻐서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 남편에게 소식을 알렸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이가 합격한 유치원은 규모있고, 부모들의 만족도 또한 높은 곳이었다. 입학 대기만 해도 70명이 넘는 유치원. 세련된 건물, 깔끔한 교실, 숲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깥놀이를 매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신 강당에 설치된 대형 놀이시설이 있어 아이들이 주 2회 정도는 그곳에서 놀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키즈카페 보다는 실외 놀이터를, 손에 묻지 않는 인공 모래 보다는 진짜 흙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놀이를 선호하는 엄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4개의 놀이터가 있고, 그 중 2곳에는 모래놀이터가 있다. 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몇몇 엄마들은 아이의 손과 옷에 모래가 묻는 게 싫다며 모래놀이터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성향의 엄마들에게 이 유치원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이는 어땠을까? 아이도 바깥놀이를 매일 하지 않는 것을 속상해할 때가 있다. 나가지 않는 것이 속상할 때도 있지만, 원 내의 실내놀이터에 가는 날을 가장 기다린다. 어쩌면, 아이의 취향에는 이 유치원이 잘 맞을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8~9년 전 즈음의 일이었다. 직급이 '대리' 시절이었으니, 난 여전히 회사에서 매우 헤매던 나날들이었다.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는 아이의 유치원 선택 문제로 골머리를 썩다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때 난 마음속으로 '유치원 가지고 뭘 이렇게 까지 고민을 해?'라고 생각하며 친구에게 확신에 찬 답변을 한 것이 기억이 난다.


"유치원 교육과정 다 비슷할거야.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 보내~"


그때, 그 친구는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친구와 같은 고민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그 때,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나도 그때의 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노라고'.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의 학부모가 된 친구는 그때의 나처럼 아주 쿨~하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때 내가 그랬지~ 왜 그랬나 몰라. 친구야~ 내가 경험해 보니까 지금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자!"

늘 그렇게 말하던 내가, 막상 아이를 위한 선택 앞에서는 예민하고, 불안하고,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대체 왜 쿨한 엄마가 되지 못하는 거야!"라며.

하지만 이 모든 고민과 질문이, 아이를 사랑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은 안다. 누구보다 더 뛰어놀기를 바라고, 더 행복하길 바라는 그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의 유치원 선택은 끝났지만, 부모로서의 선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선택의 중심은 나의 취향이 아니라 '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사진: UnsplashMarkus Spi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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