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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어려운 아이입니다.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습니다.

by 소금라떼

이 글은, 우리 아이를 만나는 당신께 드리는 작은 부탁입니다.


"너는 왜 인사도 안 하니?" 보다는
"아직 인사하는 게 조금 어렵구나? 그럼 내가 먼저 인사할게. 우리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보자.”라고 말해주세요.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예의 없는 아이는 아닙니다.

아이가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가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이가 당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너는 왜 인사도 안 하니?”
그 말은, 잠시만 참아주세요.

그 아이에게도 분명, 자기만의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네,
제 아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제 아이를 만나는 모든 분들께
진심을 담아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 아이는 잘 웃고, 잘 놀고, 친해지면 재잘재잘 참 이야기도 잘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사’입니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인사해야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라왔죠. 배꼽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법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운 사회 규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세상과 첫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이웃 어른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 친구와 선생님에게까지 모두 인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저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예절이라 여겨 제 아이에게도 성심껏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희 아이는 ‘인사를 잘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그것도 부모교육을 하는 엄마의 아이가 말이지요. 저는 제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때로는 난감하기도, 창피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는 낯가림이 심하고 섬세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예민하다’ 혹은 ‘까다롭다’는 표현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합니다.)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오랜만에 뵌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인사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는 어릴 때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제는 좀 컸는데도 인사를 잘하지 않으니 예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걱정하십니다. 아이는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는 데, 인사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부끄럽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항상 아이의 대변인이 되어 줄 수는 없기에 "인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어려워도 노력해 보자"라며 아이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이집 친구 민규(가명)의 할머니를 마주쳤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는 제 다리 뒤에 숨어 인사를 하지 않았고, 갑자기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너는 왜 인사도 안 하니?"



순간, 아이는 얼어붙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민규가 사는 2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춘 후 내려올 때마다 혹시 할머니가 타고 계실까 봐 불안해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며 화를 내신 어른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인사하는 게 뭐 그리 어렵지?' 싶어 답답하기도 했고,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으면 가정교육이 문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부모가 인사를 잘하는 모습을 보여라",
"인사는 꼭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알려줘야 한다."


사실 저 역시 부모교육 강의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수차례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은 바로 이 모든 교육에는 ‘기다림’이라는 절댓값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단기간의 노력으로는 좀처럼 바뀌지 않기도 합니다. 몇 번의 시도, 몇 주의 연습으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지요. 그렇게 저는 5년째 아이를 위한 인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기질(氣質, Temperament)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행동적, 정서적 반응 경향성을 의미한다. 즉, 아이가 세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대표적 기질 이론으로 Thomas & Chess(1977)는 기질을 9가지 차원으로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 가지 주요 기질 유형을 제시하였다.


쉬운 기질(Easy): 적응력이 뛰어나고, 긍정적 감정이 많음

까다로운 기질(Difficult): 부정적 감정이 많고, 낯선 상황에 적응이 느림

느린 반응 기질(Slow to Warm Up): 새로운 상황에 소극적으로 접근


낯가림이 심하거나 예민한 아이는 대체로 ‘까다로운 기질’ 또는 ‘느린 반응 기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성향 또는 성격(Personality)

성향은 기질을 바탕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성격적 특성이다.




중요한 점은,

기질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질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다양성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회적 행동이 부담스러운 아이에게는 억지로 강요하기보다,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영유아기의 교육은 단순한 습관 형성이 아닌 인격의 뿌리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가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시선을 받았는지는 앞으로의 자존감과 사회성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어떤 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 그 아이의 마음을 먼저 봐주세요. 그 순간, 아이만큼이나 그 부모도 마음이 무너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온라인을 보면 옳다 vs 그르다의 이분법 속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익숙해진 듯합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그 시선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인사를 어려워하는 아이를 만나셨다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세요.



"아직 인사하는 게 조금 어렵구나?

그럼 내가 먼저 인사할게. 우리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보자."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그 한마디가 아주 큰 위로가 됩니다.





사진: UnsplashTamara Govedar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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