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불신과 신념에 대하여
부모님과의 의견 충돌은 고립감을 부른다.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내 돈과 피에 묶여 있는 삶이란 비참하거나 짜증 나는구나 하게 된다. 그래서 고립은 주로 패배나 절망의 이미지가 된다. 그런데 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 이 답답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 아빠와 나는 둘 다 점심을 먹은 뒤에 식탁을 떠날 수 없었다. 대화 주제는 학문의 본질이었다. 요즘의 교육은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에만 초점을 두고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을 가르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이 두 부녀는 평소 교육에 관해선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그날 식탁 위의 공기는 아주 뜨거웠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몇 분이나 갔을까, 길고도 짧은 대화 끝에 두 사람의 결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난 학생들이 밑 빠진 학문에 의미 없는 물을 들이붓지 않도록 학문과 관련된 철학을 필수 과목으로 정해 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아직 배운 게 많지 않은 학생들이 스스로 터득할 수 없거나 교사들의 재량에 맡기기에는 격차가 생길 수 있는 경우를 위해 그런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방식을 도입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의견이었다. 난 그것이 체념이라 반박했고, 곧바로 체념은 좋은 것일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그 말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문제점을 인식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식했다면 체념은 태도가 될 수 없다.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그런 결론을 내려도 되는 건가? 실제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변화에 대한 작은 의지는 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지나치게 몸이 앞서는 타입인 걸까? 이제 새로운 의문은 어디서 이런 의견 차이가 발생했는지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정확히 4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과 업계 바깥에서 속 편하게 떠드는 사람의 차이 때문일까? 이건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충돌일까, 아니면 교육자와 작가 간의 충돌일까?
이 일은 답이 나오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갔다. 그리고 단서는 며칠인지 몇 주 뒤에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빠는 TV 리모컨을 쥘 때마다 뉴스 채널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다. 거기서 엿보이는 분노와 피로감은 나도 느끼고 있다. 아빠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떠드는 언론에 질려서 그들의 털끝 하나도 보기 싫어한다. 그렇다, 이 하늘 아래에는 감수성 없는 사실과 왜곡된 진실 두 가지만 남았다. 극도로 차가워서 어떤 온기도 의미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혹은 너무 뜨거워서 차마 그 불을 끄지는 못하고 멀리서 구경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의 계절은 점점 잔혹한 겨울과 극악무도한 여름으로 양극화된다.
그런데 아빠와 같은 대중이 언론을 혐오스럽다고 기피하는 동안, 어떤 권력은 시선의 공백이 만든 사각지대에서 더 은밀하고도 자유롭게 자기 입맛에 맞는 일들을 하나씩 성사시킬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언론의 노림수다. 아빠는 언론이 그 정도로 치밀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래, 언론은 멍청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절대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들의 배후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역겨운 추태를 똑바로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무슨 말로 진실을 감추고 우리를 선동하려고 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부패의 박멸이란 원래 끝이 없고 매번 수고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모든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까지도. 그런데 그 와중에도 각자 계기와 이유가 다르다. 우리는 믿음의 마지막 순간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난 그 갈림길이 의견이 달라지는 시작점이면서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설명서라고 직감했다. 우선 내 경우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뱃속에서부터 찬송가를 듣고 자란 2022년 5월 1일의 나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기도문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신실하고 진실하게 나의 모든 감정과 뜻을 고백했었지만, 언제부턴가 신의 자비보다 인간의 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걸었다. 아래는 마지막 기도문의 몇몇 문장들에서 서술어만 따로 빼서 모은 것이다.
저에겐 포부가 있어요. 내 생각을 전달해야겠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겠다, 새롭게 다짐했어요. 제가 그사이에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했어요.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이걸 보면 누군가는 내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한 신성한 존재를 향해 감사를 돌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문장 속 단어들의 종류와 쓰임에서 더 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마음을 발견했다. 그제야 신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마음은 죄가 아닌 선택임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 집 거실에서는 아직도 기도하는 소리와 찬송하는 소리, 성경을 읽는 소리가 울린다. 세상의 한쪽에 불신과 회의가 피어나도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종교가 희망을 상징하고 위로를 건네며 누군가의 의식 속에서 살아 숨 쉰다. 그런데 그 누군가도 믿지 않는 게 있지 않을까? 그에게도 믿음의 마지막 순간이 있지 않을까?
아빠가 몇 년 동안 잘 읽었던 종이 신문의 구독을 취소한 적이 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기서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침 신문지들이 잔뜩 쌓여 있는 책장 서랍이 거실 복도에 있다. 만약 손발톱을 깎을 때나 기름이 잔뜩 튀는 음식을 할 때 바닥에 깔아두는 용도로 홀랑 써버리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배달되었던 종이신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으로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날짜는 2019년 10월 1일, 그 이후 날짜는 보이지 않는다. 또 신문을 다 펼칠 필요도 없이 보이는 검찰 개혁에 관한 내용과 법무부 장관을 응징하는 기사들.
그때 당시 산 정상에서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눈덩이가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 이쪽을 향해 굴러오고 있다. 눈덩이가 불어나는 걸 보면 그 크기로 보아 여기 도달할 때쯤에는 분명히 재난일 텐데, 정말 조만간 우리를 덮칠 것 같다. 그사이에 상황이 뒤집히지 않는 한, ‘대단하지 않은’ 5년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우리는 이 극심한 불안을 늘 달고 살아야 한다. 그런 지금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검찰은 이미 ‘조직을 위한’ 조직으로 전락했다. 손아귀에 법을 꽉 쥐고 있으면서 선출직도 아닌 그들은 여론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법과 관련된 운명을 그들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그 권력을 직접 견제할 방법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 장관의 범죄에 관해서는 더 엄격해야 한다. 머리를 더 차갑게 하고, 봐주기 수사 같은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소와 재판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우리가 정의라 부르는 것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된다. 과연 이것이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심판하는 선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단 한 건으로 끝날 마녀사냥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정의의 실현일까, 권력의 횡포일까? ‘검사와의 대화’가 정치적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하던 분들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판을 짰다. 당시의 타임라인은 처음 문제가 됐을 때 제대로 평가됐어야 했다. 개혁에 반대하는 조직의 협박을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어쩌면 “걔들은 원래 그래” 같은 안일한 판단이나 조직의 권위를 개인에게 투영시킨 실수가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는 대중을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1차로는 정치권과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고, 2차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 올바른 기능을 위해 아무리 좋은 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유권자나 소비자가 먼저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생태계는 계속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택한다. 그래서 선거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무게를 인식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대선 당시 득표율보다 낮다. 비교하는 표본이 다르니 단순히 수치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그런 복잡한 계산까지 안 하더라도 우리는 16,394,815명 중 몇몇이 취임 1년 만에 마음을 바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별개로 티가 나지 않는다. 변화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같은 말 한마디로 일단락되는 사후 판단만이 황폐한 땅 위에 모래바람처럼 공허하고 지저분하게 흩날리고 있다. 아마도 천상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정의를 실현해주길 기다리는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권선징악이 일어나리라 믿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숭고한 의식을 아무도 못 보는 데서 조용히 치르고 있는 걸까? 그래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이 사회를 위해 적어도 기도는 하고 있을까?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은 고수하면서?
건전한 시민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난 아직도 2017년 3월 10일을 잊지 못한다. 벚꽃이 피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봄바람은 참 포근했다. 필수 교양으로 들었던 진로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교수님이 그날 있을 이벤트에 기분이 좋아서 수업을 일찍 끝내주셨다. 어쩌면 전 국민이 들떠 있었을 것이다.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시끄러웠고, 그땐 잘 보지도 않던 뉴스를 클릭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한 문장이 지금까지 총알 자국처럼 머리에 깊이 남아 있다. 난 대중의 힘이 이뤄낸 결실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봤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시점에 두 눈으로 마주한 밝은 빛이었다.
우리는 최근 모두 한 번씩 고립을 경험했다. 사실 최근이 아니더라도 과거에 이미 경험했을 수도 있고,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든 경험할 수도 있다. 어쨌든 고립은 당연한 상황이나 어떤 숙명적인 족쇄, 그간의 삶이나 미래의 삶에 대한 심판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게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고립감들이 뭉쳐 아주 가냘픈 밝은 빛 하나도 통과할 수 없는 빽빽하고 거대한 먹구름을 만들었다. 그런데 범인을 지목하기에는 상황이나 요인들이 너무 복합적이고 까다롭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된 문제들은 흔히 책임 전가의 형태로 결론지어지곤 하는데, 군주제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한 표의 힘이 주어질 때마다 한 줌의 책임도 같이 주어지는 법이다. 내가 아주 특별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니라 해도 국적과 신분을 활용해 국가적 선택에 동참하는 순간 후회와 반성은 어느 정도 내 몫이 된다. 달랑 종이 한 장으로 어떤 계층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에게 칼을 줄 수도 있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자기 방에만 살면 자기 삶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결과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은 다시 자기 삶을 자기 방에 가둘 것이다. 이 굴레에 갇히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립감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영원히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또 다른 시도를 해볼 기회가 있다. 개념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고립을 출발점으로 삼아보는 거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는 ‘자기만의 방’에서 믿지 않기로 한 무언가가 있다면, 새롭게 믿어보려는 무언가도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앞으로의 일들이 시작될 것이고, 도모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폭발력이 단순히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큰 목표 쪽으로 내 등을 떠밀 것이다.
이 글은 여러분의 얼굴에 내뱉는 호통이 아니라 내 심장을 과녁 삼아 겨눈 활시위다. 내가 똑바로 판단하고 있는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점검하는 중이다. 비록 지금은 글쓰기로 버는 돈이 전혀 없지만 언젠가 내가 작가로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색깔을 살짝 드러내야 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노골적인 정치적 구호를 끼워 넣어 판매량을 올려야 한다. 어쩌면 가장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