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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 May 26. 2023

한 나라의 정서는 최근에 겪은 전쟁의 영향을 받는다

고성 통일전망대와 한 남자 아이돌의 죽음

난 나 자신에 대한 적응 기간을 거치고 있다. 그게 내가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다. 어떻게 나의 모든 기질과 특성을 이해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지가 풀리지 않는 문제다.


딱 한 달 전의 어느 날이 계속 생각이 난다. 그 날은 참 기이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단 한 가지 메시지로 결집하는 것 같았다. 그 날의 모든 것이 하나로 모였다. 여행차 갔던 속초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이었다.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 아침에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을 때 남자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슷한 죽음이 이미 여러 번 있었는데, 우리는 또다시 그 죽음을 목격했다.


심란해진 마음을 붙잡고 난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민간인통제선을 지나치고 전망대 위에 올라 망원경으로 군사분계선과 금강산, 해금강을 자세히 관찰했다. 금강산의 암석이 쪼개져 있는 모양과 골짜기 사이에 핀 나무까지 전부 다 훤히 보였다. 난 망원경 안에 동전을 계속 넣었고, 각도를 조정하며 바다에 맞닿은 해금강까지 쭉 이어지는 능선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황홀했지만, 무거운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양 측의 군사분계선이 마주보고 있는 그곳은 한반도의 현대사 중 가장 강렬했던 사건이 고스란히 담긴 현장이었다. 뉴스에서 북측이 미사일을 쐈다는 발표가 나올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분명한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난 내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실감했다. 그리고 아침에 접했던 어떤 이의 죽음과 그동안의 나의 괴로움이 그 순간에 함께 떠올랐다. 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들이 단지 개인의 문제일지 의심이 갔다.


원래는 반도지만 허리가 잘려나가 아래쪽 절반만 가지게 된 우리나라는 땅으로도, 바다로도 가로막혀 있다. 그래서 좁은 바다 위에 섬처럼 떠서 모든 문제를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내부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형태로 실현된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이 대표자이자 관리자인 어떤 한 사람에게 있으니, 그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문제를 수습할 필요 없이 자신의 자리만 내놓으면 된다. 얼마 안 가, 남은 사람들은 딱히 학습한 것 없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다시 잘려나간다.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보이는 하늘보다 더 넓고 무겁게 우리를 압박하는 사회 구조는 공기처럼 무색무취로 곳곳에 흩어져 들숨 속에 섞인다. 치명적인 기체를 들이마시면서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는 분단국가의 정서를 훌륭히 흡수했거나, 산업의 부조리를 그냥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원인을 가장 먼저 자신에게서 찾는다. 너무나도 잘 ‘교육된’ 탓이다.


그렇다면 잘 ‘교육된’ 국민들을 착취하는 분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뒤 딱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과업은 ‘망가진 나라를 일으키기’였다. 전쟁을 겪은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그때의 트라우마와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공산주의를 혐오해야 하고, 저들보다 쌀이 부족해서는 안 되고, 누군가는 평화를 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화해의 제스처조차 경멸한다. 갈등은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뻔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미래는 안정감이 없다. 그래서 그 불안을 덮어버릴 만큼 과도하게 큰 성과가 필요하다. 그런데 천연자원도, 지리적 이점으로 인한 수익도 없는 환경에서 그런 성과는 어떻게 이룰 수 있었을까?


초반에는 땅덩어리가 좁은 데 비해 인구 밀도가 높으니 그 많은 인구를 착취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실 망가진 나라를 일으키면서 택한 방법은 이것 한 가지밖에 없다. 다른 방식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규모의 경제와 산업을 떠받쳐줄 만큼 생산 가능 인구가 많지 않다. 과거에 이 나라가 그렇게 목 터져라 부르짖던 ‘인적 자원’에도 기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국가를 지휘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딱히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눈짓이나 손짓을 하고, 표 수를 확보하기 위해 멍청한 지지층을 새롭게 끌어모은다. 잘못이 드러나면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법칙을 피해가기 위해 진실을 덮어버린다.


한 나라의 정서는 가장 최근에 겪은 전쟁의 영향을 받는다. 다른 말로는, 새로운 전쟁을 겪지 않아서 아직도 그 전쟁에만 갇혀 사는 것이다.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간 과거와 달리 현재는 적극적인 설계가 필요한 법인데 말이다.


전쟁통 속 인간의 치열한 생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부산의 달동네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전 시대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집과 골목들이 노후화되어 낡고 부서질 동안 우리의 정신과 영혼도 같이 낡고 부서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 처참한 모습과 다르게 완전히 건강하고 활기차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대사와 교육과 미래에 대해 올바른 논의를 하고 있을까? 할 수는 있을까? 사회가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릴 때 우리는 그 부당한 처우를 조용히 감내해야 할까? 그러고 싶은가?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다만 가끔씩 까먹을 뿐이다. 어쩌면 이 기형적인 구조를 뒤집기 위해 새로운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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