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배신, 혹은...
바야흐로 먹어야 좋은 여름이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열량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식단으로 푹푹 찌는 한낮의 더위를 도대체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몸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정신의 평화를 위해 우선 잘 먹고 봐야 한다. 거기다 분노하고 열광하는 데도 추가적인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니,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가 필요하다. 그것도 마구잡이 말고 꽤 괜찮은 방식으로.
11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한 금요일은 전날 밤에 불려둔 병아리콩을 끓는 물에 약 1시간 동안 삶는 것으로 시작했다.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은 뒤, 한창 잘 먹다가 이제 몇 장 안 남은 통밀 또띠아를 한입 크기로 잘라 소금을 살짝 쳐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그동안 7월에 제철을 맞은 찰옥수수를 압력솥에 쪘다. 처음 해보는 요리 세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병아리콩은 부드럽게 잘 삶아졌고, 또띠아는 살짝 탄 것도 있고 덜 구워진 것도 있었지만 모두 내 뱃속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옥수수는 전분기가 많아서 조금 복병이었지만 다진 마늘을 넣고 센 불에 빠르게 녹인 버터와 함께 볶으니 먹을 만했다. 옥수수를 볼에 옮겨 담고 마요네즈와 그릭요거트, 파마산치즈 가루, 다진 양파와 대파, 레몬즙, 파슬리를 한 번에 넣고 섞으면 콘샐러드가 완성된다. 중동 지방의 음식인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병아리콩 삶은 물에 다진 마늘과 참깨, 레몬즙을 함께 믹서기에 갈아 접시에 펼쳐놓고 숟가락으로 나선형 모양을 낸 뒤 올리브유를 겉에 살짝 두르면 완성된다.
후무스에서는 건강한 맛이 났고, 콘샐러드에서는 죄책감의 맛이 났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조합은 추천하지 않는다. 병아리콩을 불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장장 27시간의 노력이 만들어낸 담백함과 느끼함이 만나면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반드시 김치를 찾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치와 잘 맞아떨어지는 맛도 아니다. 만약 피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당장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딜레마와 같은 금요일의 점심 식사는 어느 정도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가족들 대신 내가 남김없이 다 먹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블로그에 요리와 음식에 관한 글을 써보겠다고, 심지어 안 해본 메뉴에 도전해 박진감 넘치는 글을 써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금요일 11시에 나는 아침에 먹을 그릭요거트를 만들기 위한 여정도 함께 시작했다. 평소대로라면(겨울이라면) 전기밥솥에 유산균 음료 2병과 일반 우유 2L를 넣고 서로 잘 섞이게 저어준 다음 1시간 보온하고 4시간 식히고 또 1시간 보온하고 4시간 식히는 과정을 거쳐 면포에 올리고 유청을 분리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중복과 말복 사이의 무더운 여름이라 고온에 유산균이 죽어버릴 수 있으니 보온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처음엔 35분 동안 보온했는데, 조금 더운 것 같아서 두 번째 보온할 땐 30분으로 했다. 이런 어림짐작이 제대로 된 판단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10시간이 지났고, 면포에 올려 유청을 분리하기 시작한 후 또 12시간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오전 9시, 상쾌하게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여름이 싫은 이유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길 바랐다. 원래 그릭요거트가 되었어야 할 하얀 덩어리는 완전한 실패작은 아니었다. 노랗고 투명한 유청에 흰 우유가 섞이지 않았으면 그건 단백질이 성공적으로 응고되었다는 뜻이다. 면포 위에 남은 덩어리는 좀 묽기는 해도 분명 요거트가 맞기는 했다. 하지만 한입 맛을 본 순간 이 하얀 덩어리는 그릭요거트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늘 잘 만들어 먹어와서 아주 견고한 믿음이 있었던 음식이었는데, 시간 계산에 착오가 있었거나 날씨가 너무 더웠다는 이유로 차마 그릭요거트가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 인내심도 더위에 져서 나는 끝내 위인이 되지 못했다. 발효가 덜 된 요거트를 용기에 담고 한 숟가락을 더 떠먹자 보통의 시큼한 맛이 아닌 고소한 우유 맛이 퍼지면서 짜증이 확 났다. 결국 불꽃 같은 신경질을 잠재우지 못해 그릇을 싱크대에 던지고 찌꺼기가 묻은 면포를 온 사방에 물이 다 튀도록 박박 문대면서 화풀이했다. 난 모든 원인을 저 강렬한 태양에게 돌렸다. 이 계절은 혐오스럽고, 앞으로 해마다 이런 환경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시 견딜 만하다고 해도, 음식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배신할 것이다.
뜨거운 공기에 폐가 갑갑해지기 시작한 11시, 폭염 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2시간 전에 발생한 분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난 되다만 요거트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 다음 문단에 쓸 점심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등장하는 또 다른 제철 식재료인 감자는 3개만 껍질을 깎아 찐 후 으깨서 밀가루와 감자 전분, 달걀 노른자를 넣고 반죽했다. 하지만 습도 때문에 감자는 거의 질척거리다시피 했고, 반죽은 자꾸 손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밀가루의 도움을 받아 대충 형태를 유지시켜 끓는 물에 데치고 기름에 구웠다. 그리고 새로운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 양파와 마늘을 넣어 볶고 데친 브로콜리를 추가한 다음, 우유와 치즈로 크림소스 비슷한 질감을 냈다. 중간에 간을 봤더니 맛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소금과 후추, 파프리카 가루를 양껏 넣어 자작하게 졸였다. 그렇게 완성된 소스는 구운 뇨끼를 먼저 담아둔 그릇 위에 부었다. 뇨끼를 구운 프라이팬은 그대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빠르게 구워내는 데 사용했고, 7월에 가장 맛이 좋은 참외는 속을 파내고 얇게 썰었다. 그리고 참외 과즙과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으로 간단한 드레싱을 만들어 참외 위에 올렸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뇨끼를 무사히 만들고 나니 나머지 과정은 비교적 쉬웠다. 다만 흐물거리는 반죽으로 만들었더니 감자 전분의 쫄깃한 식감보다는 덜 치댄 밀가루의 식감과 비슷했다. 그래도 이런 어려운 음식에는 도전 정신과 정복감이 포함되어 맛 평가가 후해진다. 거기다 예열된 팬에 빠르게 구워 육질이 부드러운 스테이크와 아삭한 참외가 아쉬운 식감을 보완하며 반박을 차단한다. 이 음식을 다시 해 먹으라 하면 분명 고민할 테지만, 어쨌든 후회 없는 한 끼 식사였다.
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다.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어쩌면 당연히 주어진 것들을 누릴 기회가 점점 사라져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번 혀끝에 작별인사의 아릿한 맛이 함께 느껴진다. 그래서 이 글에 나올 마지막 음식은 다른 제철 식재료보다 더 사정이 급한 것들로 만들어졌다. 난 입맛이든 관심사든 변덕이 심해서 같은 음식을 며칠 동안 계속 먹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는 소고기미역국을 끓이기로 했다. 이미 내 생일은 한참 지났고 다가오는 가족의 생일도 없는 시점에 먹는 미역국이란 어쩐지 색다르다.
마른 미역 한 줌을 물에 불려둔 사이, 곁들여 먹을 진미채를 준비했다. 물에 한 번 씻어낸 진미채는 팬에 기름 없이 물 한 숟가락, 고추장 한 숟가락과 함께 약한 불에 볶았다. 양념이 잘 풀어지고 수분이 날아가면 불을 끄고 물엿과 참기름을 넣어 윤기가 돌고 살짝 단맛이 나도록 했다. 그렇게 완성된 진미채는 한쪽에 치워두고, 한우 사태를 작은 한입 크기로 썰어 큰 냄비에 센 불로 참기름과 함께 볶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고기의 핏기가 가시면 미역을 적당한 간격으로 썰어 냄비에 넣고 마저 볶았다. 그러다 고기가 너무 익어버리기 전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물을 붓고, 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센 불에 아주 오래 끓인다. 김이 펄펄 나고 국물이 끓는 소리가 거슬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와 미역에서 제대로 된 풍미가 우러나올 때까지 고온으로 채찍질했다. 그동안 조지 오웰의 에세이 한 편을 읽었더니 시간이 딱 맞았다. 그리고 미역국을 끓이는 과정이 어렵지 않아서 여유롭게 인상 깊은 문장도 메모해두었다.
돈과 권력이 없어져야만 그들 중 젊은 세대가 자신이 몇 세기를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부터 미역국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도 일단 요리를 마저 끝내야 하니, 국물이 많이 졸아들었다 싶을 때 국간장과 다진 마늘을 넣고 물을 추가했다. 여기서 우리 집의 레시피에 따르면 액젓은 넣지 않고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국은 계속 끓일수록 진국이 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먹어도 되겠다 하는 때에 그릇에 국을 퍼서 먹으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역국에 관해선 나의 객관적인 평가는 들을 수 없다. 미역의 특정 성분이 내게 주는 어떤 일차원적인 만족감 때문에 국이 잘 끓여졌든 아니든 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의 간을 약간 슴슴하게 해서 거기에 밥을 말고 좀 전에 만들어둔 진미채를 하나씩 집어먹으면 맛의 조화는 최상이다. 후각이 예민해 비린내 나는 음식은 절대 못 먹는 내가 유일하게 바다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라면 이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 즐거운 경험 중에도, 이미 내 생일은 한참 지났고 다가오는 가족의 생일도 없는 시점에 먹는 미역국이란 어쩐지 비장하고 엄숙하다.
진미채의 원재료인 오징어는 이미 북쪽 바다로 도망간 지 오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 곁에서 살아 번식하는 식재료들을 마음껏 요리해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트에서 사 온 식품의 유통기한이 점점 다가오는 것처럼, 제철 음식의 혜택도 아직 살 날이 많은 세대에게는 머지않아 전설 속의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기후위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과 환경 보호 때문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각각의 동식물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맛, 그리고 지역의 토양과 바다에서 난 특징적인 맛은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주제가 될 것이다. 자유를 위해 싸워온 현대인들이 혀끝의 자유를 내주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오징어가 북쪽 바다로 도망간 것보다 더 비극적이다. 환경이 진짜로 파괴되는 것조차 기다리지 못하는 집단이 음식의 배신, 혹은 (이전과 같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멸망이라고 부른다면) 문명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다. 우리는 소고기와 아보카도보다 소금과 해조류, 어패류를 먼저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난 재료들을 피해가느라 식탁 풍경이 완전히 바뀌거나, 아니면 정부의 무책임한 방관으로 인해 은연중에 우리의 몸속에 방사능이 서서히 축적되는 미래가 보인다. 위험성을 축소하고 진실을 가린 내용을 언론을 통해 보도하고 광고로 내보내면, 그래서 사람들이 조작과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믿으면 과연 모든 것이 정상적이게 될까? 오염 물질을 품은 채 증발한 바닷물이 머리 위에 비를 뿌리고 토양에 스며들어 어떻게든 입에 쑤셔 넣어지는 이 모든 과정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아무도 이 결말을 바꾸지 않으면, 오늘의 식사는 이 시대 최후의 만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