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나는 하이에나처럼 집보다 시원하고 덜 지루한 곳을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항상 최상의 의미를 기대한다. 과연 이번에도 그 시도가 성공할까?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는데, 국내 최초로 ‘개방 수장고’를 아예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써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전시 형태가 날 끌어당겼다. 내가 기대하는 최상의 의미는 분명 거기 있을 것이다.
일단 입장료 없이 1층 개방 수장고 안에 들어서면 거기서는 동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의도된 효과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획되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시장에 물건을 잔뜩 늘어놓은 것처럼 규칙도 없고 통일된 주제도 없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관람객의 자율에 맡긴다. 사실 큐레이션은 피로하다. 벽에 적힌 긴 글을 읽고 바닥의 화살표를 보며 따라가느라 시선과 집중력이 쉽게 분산되곤 한다. 그리고 전시기획자가 부여한 의미를 관람객은 딱 정량만큼만 배급받는다. 그때 관람객에게 떨어지는 가치의 덩어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진다. 그런데 그렇게 정확히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가치라는 것은 수치화하고 정량화할 수 있는 걸까? 또 그런 세심하고도 위선적인 손길이 필요할 만큼 감각적인 경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작품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여기에는 권위와 신화가 과감하게 삭제되어 있다. 그 빈자리는 재료와 보존에 관한 이야기가 대신한다. 3층의 ‘보이는 보존과학실’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재료에 맞게, 그리고 오염되거나 변형된 상태에 맞게 작품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방식이 긴 복도의 벽에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다. 마침내 복도의 끝에 도달하면 각종 기계들과 복원 중인 작품들에 둘러싸여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저항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넘어 예술계 전체를 크고 넓게 바라보게 된다. 보이지 않았던 기능에 눈길이 가고 생각이 닿는 순간은 작품 관람의 경험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작품과 예술 그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으려 했던 행동은 가장 좁은 해석이었는지 모른다.
예술은 이만큼 날것이어야 한다. 아주 특별해서는 안 되고, 일상처럼 자연스럽고 자주 나타나야 한다. 특히 이곳의 조각과 그림들은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 그중에서도 수장고에 전시되어 있으니 동떨어지지 않고 최대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이쯤에서 국가가 사람들에게 예술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일단 내가 여러분보다 먼저 생각해 봤더니,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어때야 하는지 금방 답이 나왔다. 미술관을 성역으로 만드는 일은 예술계의 고고한 콧대만큼 진입 장벽을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입장료로 수익을 올리는 전시회처럼 어떻게든 이목을 끌려고 하거나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는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주제를 한정 지으면 안 되겠지만, 내가 제안하는 건 지금 시대의 대중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다. 마치 온갖 오락과 유행으로 뒤덮인 들판 위에 혼자만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거다, 이질감을 위하여. “공공”의 진정한 의미와 역할은 이런 게 아닐까?
그 뜻에 부합하는 세 작품이 있다. 완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지만, 내 관점에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사실 그림까지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방문한 날에는 전시가 준비 중인 상태라서 조각품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런 상황이 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만약 그림이 생각이나 의견에 가깝다고 한다면, 조각은 행동에 가깝다. 인간의 형상을 본뜬 작품은 특정 행동을 실물 크기와 비슷하게 보여주고, 관람객은 다양한 각도에서 그 행동을 관찰한다. 조각품의 코에 숨결을 불어넣지 않았으니 거기에 생명은 없지만, 우리는 어쨌든 눈앞에 존재하긴 하는 얼굴과 몸에서 ‘실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런 경험은 조각품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맛이다. 난 그 맛을 곱씹으면서 큐레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세 명의 ‘실천하는 사람’을 만든 작가들 간의 접점이나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국가에서 이 작품들을 사들였을 때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고 모른다. 심지어 전시장 안에서 이들은 연달아 위치해 있지 않고 오히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 세 작품을 내가 마음대로 구성한 순서대로 바라보면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간다. 그 상승하는 힘이 우리를 위로 끌어올리고 이제 곧 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