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사실 목적이 아니라 보상이다. 정신적인 측면과 금전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한 보상. 이 보상의 유통기한이 다하면 곧바로 우리를 외면하는 변화에 적응할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승리는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매번 마주칠 수 없다. 만약 승리 자체가 어렵다면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과 유대감, 소속감, 동질감, 세리머니 등이 그 기능을 어느 정도 대신할 수는 있다. 어쩌면 덕질이라는 건 좋아하는 대상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 같은 호흡으로 살아 숨 쉰다는 증거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건지 모른다. 위로는 못 올라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또는 오랫동안 한 팀에 속해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e스포츠 특성상 한 팀에 오래 있기 힘든 프로게이머와 그룹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솔로 활동을 주로 하는 아이돌 멤버를 덕질하는 건 생각보다 불안한 일이었다. 모든 이벤트가 최애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꽉 차고 굿즈도 전부 최애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냥 즐거웠다. 팀 내 경쟁이나 기싸움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으니 어찌 보면 가장 정신적으로 편안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인기와 인지도가 고지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안정적인 팀이 없으면 사실상 최애를 단단하게 붙잡아줄 바탕이 없다. 이건 속된 말로 ‘대중장사’로 먹고사는 업종이 겪는 딜레마다. 독차지할 것이냐, 상부상조할 것이냐. 그 고민은 팬들도 똑같이 느낀다.
팀을 결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특수하다. 단지 어떤 한 개인의 부조화로도 팀의 조화는 깨지기 십상이라 전자보다 후자가 더 달성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반드시 속할 운명이다. 따라서 기왕이면 희생이나 무임승차를 할 필요가 없는 건강한 공동체를 꿈꾼다. 그런 가운데 혼자만의 조화는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없어서인지 영 불안하다. 그때 마음이 잘 맞고 서로를 더 이롭게 발전시킬 동료가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이 한편으로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기 힘든 이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대신 이뤄주는 게 덕질의 원동력이라면, 덕질은 욕망과 야심이 아주 진하게 농축된 활동이다.
케이팝과 e스포츠는 수요자든 공급자든 젊음을 매개로 한다. 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언젠가 사장될 산업인 것도 맞다. 또 지금은 분명히 힘든 시기고, 단기간에 아주 가파르게 치솟았던 앨범 판매량도 벌써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가 위축되어 시장이 쪼그라든다고 해서 과연 가치도 떨어지게 될까? 소멸은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는 여기서 덕질을 멈춰야 할까? 아직은 케이팝과 e스포츠 모두 팬과 머글을 포함한 대중에게 의미가 큰 상징적 존재다. 세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때에도 꾸준히 새로운 팀과 무대들이 나왔던 걸 보면, 우리의 문화적 기질은 그 두 가지 장르를 확실히 좋아하고 환영한다. 그리고 차트 밖 무대가 존재 이유를 계속 상기시킨다.
11월 26일 일요일 오후에는 집에서 NCT 127(이하 127)의 콘서트를 온라인으로 시청했다. 127은 이제 난해함마저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관객들을 설득했다. 혹시 모를 반발의 목소리도 입을 다물다 못해 힘없이 턱을 떨구게 만들었다. 난 기대와 예상을 가뿐하게 뛰어넘은 멤버 한 명 한 명의 음악적 역량을 확인했다. 가장 높고 단단한 고음을 담당하던 태일의 공백도 ‘남성중창단’이라는 별명답게 여러 멤버가 골고루 나눠 소화했다. 그리고 <영웅>과 <질주>, <팩트 체크>를 쉬지 않고 연속으로 달리며 보여준 독기 가득한 라이브는 어느새 127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원래 해오던 것을 지루하게 반복하기만 하지 않고 계속 기존의 열정을 경신한다.
멤버들의 탄탄한 실력과 음악으로 공연 전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건 작년 <The Link+>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뛰어난 기획력이 느껴졌던 부분은 차원의 문 같은 레이저를 통과하는 연출이나 베일 속에서 이루어진 <신기루>의 편곡 버전 무대였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그것이 꿈임을 확실하게 알려주지만 결국에는 전부 벗겨진다. 영화 <매트릭스>를 오마주한 이번 콘서트에서 127은 세계의 구조를 먼저 의심하고 그 틀을 한 겹씩 뚫고 나가 마침내 현실의 삶에 도달하는 듯하다. 그러나 혼자서만 그 구조를 깨고 나가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멤버들과 관객들에게 손을 내민다. 팀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개개인의 모습들과 소통하는 법, 관계 맺는 법,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법을 보여줌으로써 영감을 준다. 조화는 승리보다 더 많은 것을 일으킨다. 그게 내가 이 팀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꾸준히 선보여 왔던 유닛과 솔로 무대를 이번에는 생략했다는 점에서도 팀 활동에 대한 그들의 결의가 엿보인다.
고맙게도 난 실력에 대한 의심이나 노심초사 없이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127의 ‘네오함’에 끌렸지만, 이제는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하든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들고 오든 불호가 전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도 똑같이 머리 풀고 달릴 내 모습만 상상될 뿐이다. 어쨌든 이들을 좋아하는 한, 무대의 공백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떠나는 건 언제나 나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전에는 덕질하는 대상의 태도와 비전이 팬들을 놔둔 채 혼자 도망간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약 5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데뷔 이래 가장 완성도 높은 콘서트를 마친 127은 줄곧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적절한 비교는 아닐지 모르지만, 결국 이전의 덕질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덕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6일간의 콘서트를 전부 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무대를 소화했던 127의 감정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조되어 마침내 마지막 날에 온라인이라는 한계를 뚫고 터져 나왔다. vcr과 의상을 갈아입는 시간도 최소화해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오직 무대로만 꽉꽉 채운 뒤 찾아온 엔딩 멘트 차례에서 깊은 꿈에 젖어 있던 날들을 뒤로하고 갑자기 훅 현실 세계로 던져졌다. 어쩌면 이 콘서트의 구성뿐만 아니라 공백 없이 달려온 7년간의 활동도 꿈같은 나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이돌과 팬들의 앞에 나타난 건 거대한 현실이다. 군백기를 함께 맞이할 그들은 서로의 눈물을 통해 불안을 공유했다. 조명을 받는 쪽과 받지 않는 쪽의 관점 차이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인데도 동상이몽은 없었다. 감정의 격차도 방어막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거의 처음으로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었다.
어렵게 이룬 조화를 깨뜨리는 건 괴롭다. 사실 올해 정규 5집 활동부터 태일이 불참하면서 그 괴로움이 조금씩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 번 이뤄진 조화는 어떻게 변주되어도 본질과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이제 그건 상관없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공백도 끊어내지 못할 결속을 약속했다. 멤버들의 안쓰러운 눈물이 어떤 면에서 그 약속에 쐐기를 박았다. 때문에 그룹의 존속을 걱정하거나 당분간 보지 못할 완전체를 아쉬워하는 마음보다 절대 탈덕은 없다는 확신이 더 크다. 이건 단순히 팀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기엔 멤버들이 미치도록 믿음직스럽다. 이제 남아 있는 과제는 ‘다른 시작을 어떻게 준비할까?’와 ‘새로운 형태를 어떻게 시작할까?’다. 난 앞으로 127과 시즈니들이 함께 이겨내야 할 현실까지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