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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Feb 06. 2022

고장 난 나를 쓰던 시간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를 바라며


책상을 새로 사면서,

집 구조도 바꿀 겸 대청소를 하는데

우연히 예전에 썼던 노트를 발견했다.


매우 부끄럽지만ㅎㅎㅎㅎ 

열심히 썼던 연출 노트


무대 장치 이동 동선 생각했나 보다


그중에서도 

완성 안 된 넘버의 가사를 쓰느라고 

골머리가 아팠던 흔적을 

이제 와서 보니까 참 이상했다.


5번 넘버 고장 난 나 쓰는 과정


서하 첫 넘버 가사 만드는 중



이 난잡한 글씨들을 썼던 

그 밤이 아직 기억이 난다. 

상황과 감정, 음가에 맞게 

써 내려가느라고 애먹었던 그 시간... 


근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정말 그때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말들이 아닌가 싶다.

ㅎㅎㅎㅎㅎ...


정리 한 번 하고서


가사 1차 정리

진짜ㅎㅎㅎ 

서하 마음을 헤아리느라고...


생각해보면, 아직 내 안에서도 

완벽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은,

반쪽의 얼굴만 가진 캐릭터를 부여잡고

연기를 해주었던 친구들과

으쌰 으쌰 했던 시간들...


그래서 대본이 무거운 말들을 

유려하지 못하게 전하고 있었지만

버틸 수 있었지 싶기도.


새삼 노트를 다시 보니

나 그때, 생각보다 훨씬 열심히 살았더라...ㅋㅋㅋ


아무튼 그리하여 대본에 실린 판은


#5 고장 난 나


그런데 대본 리뉴얼을 하면서는

이 가사는 거의 90% 이상을 날렸다.

곡 자체를 아예 새로 썼기에.


그래서 이 노래는 진짜 진짜로

그때, 그 시절에만 불리고 들을 수 있던

그런 노래로 남았다.

ㅎㅎㅎ 전설의 레전드 됨


곡도 처절하고 가사도 처절하고

그런 이유도 있었거니와

뒤에 나오는 다른 곡들과

음악적 통일성을 만들려고

작업을 다시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가사를 다시 정리해보자면,




고장 난 나


작곡: 김민하

작사: 숨 (Soom)


사실 알아

네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멀쩡한 척해도 다 들키는 걸


그저 나쁜 꿈이 아닐까

깨고 나면 모두 없어질 일처럼


길고 기나긴 밤을 지나 아침이 오면 깰까

겨울 지나 결국에는 봄이 오듯이

하지만 알고 있어 아무리 애써 외면해봐도


고장 난 내 모습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야

모른 척해봐도 달라지지가 않아

매일 밤 소리 없이 애원했어 눈을 떴을 때

어제와는 달라진 내가 될 수 있길


모두 말해 시간 지나면 변한다고

아픈 일도 결국 지나간다고

그저 나쁜 꿈인 것처럼

깨고 나면 모두 사라질 일처럼


길고 기나긴 밤을 지나 아침이 오긴 할까

겨울 지나 결국에는 꽃이 피듯이

하지만 알고 있어 아무리 애써 외면해봐도


고장 난 내 모습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야

노력해봐도 달라지지는 않아

매일 밤 소리 없이 애원해도 눈을 떠보면

어제와는 달라진 내가 될 수 없어


어제와는 달라진 내가 될 수 없어





가사가 매우 처절한데...


극 중 이 노래를 부르는 서하라는 캐릭터는

과거의 큰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틱한 삶을 살고 있는 캐릭터다.


뭐랄까 고슴도치 같은 인물이었달까.


내일은 괜찮아지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괜찮은 내일을 맞을 수 있는지

해답을 오랫동안 찾지 못해서

주저앉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가 고장 난 것처럼 느껴진 시간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자꾸만 지난 일들이 내 발목을 붙잡을 때.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라고

가볍게 말하고 과감하게 돌아서고 싶어도

마음이 마음대로 안될 때...


서하가 이제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았을까.

돌아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 좋겠다.




아래는 덤으로,

넘버가 총 12개인 대본을 썼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자 가사

윤영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미미 2가 부르는


9번 넘버, 생일 축하해요

작곡: 김민하

작사: 숨 (Soom)


#9 생일 축하해요 
#9 생일 축하해요


그냥 이 노래는 노래로 듣다 보면

윤영의 대과거와 과거가..

스르륵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고

장면을 만들 때, 

상당히 애틋하게 그릴 수 있었어서

가장 좋아했다.




대본이나 가사들이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정말로

그때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말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사실 그래서 이런 데에 이런 거를 이렇게...

대놓고 올리는 게 (누가 얼마나 보겠냐만)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이 대본엔

잘 썼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에게는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됐을

그런 글자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작품으로서 좋은 대본이든 아니든

나에게는 항상 후회 없을 결과들이다.


ㅎㅎㅎ

그래서 여기에도 흔적으로 남겨본다.


여전히 더 좋은 것, 쓰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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