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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Apr 04. 2022

말 가르쳐주는 사이

엄마가 물었다. 스밍이 뭐냐?


어느 날 대뜸, 엄마가 물었다.


- 스밍이 뭐냐?


전활 받자마자 다짜고짜 날아든 질문에 당혹스러웠지만 풋- 하고 웃음도 났다. 엄마는 요새 덕질 중. 그러다 보니, 열렬히 사모하는 가수님의 음악을 '스밍'(스트리밍) 해줘야 한다는 거다. 근데 도통 스밍이란 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엄마는 알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딸에게 전활 걸어 물었다. "스밍이 뭐냐?"


좋아하는 음악, 가수는 제법 있는 편이지만 덕력이 부족한 나는 팬덤들이 말하는 스밍의 아주 정확한 의미는 몰랐다. 말 그대로 스트리밍은 음악을 실시간으로 재생해서 듣는 것 아닌가? 뭐, 대강 알기론 한곡을 반복해서 듣거나 몇 분 전 들었던 음악을 금방 다시 재생하는 게 가수들의 음원 점수인지, 수익인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점수인지 수익인지를 올려주기 위해서 일정한 패턴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게 팬덤에서 말하는 '스밍' 아닌가?


엄마의 예상치 못한 종류의 질문에, 스밍에 대해서 살짝 찾아보고서 스밍을 하고서 '스밍 인증'이라는 걸 하는 과정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멜론 아지톡이 사라져서 그 스밍 인증도 사라진 것 같다.) 그리고서 엄마가 나에게 물어온 말 '스밍'.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 후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밍 인증을 해냈다.




엄마와 길을 걷다 물었다.


- 엄마 저 노란 건 뭐야?

- 산수유


엄마와 밥을 먹다 물었다.


- 엄마 이 나물은 무슨 나물이야?

- 이거? 세발 나물


나무 종류나, 나물 종류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종종 물어볼 때마다 척척 답해주는 엄마가 참 신기했다. 엄마는 내가 낯설어하는 것들의 이름을 많이 알았다. 파란 나물은 여전히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산수유가 핀 나무를 보면 산수유구나 기억해낼 수 있게 됐다. 나무 이름 하나가 머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이제 나도, 엄마가 낯설어하는 어떤 것들의 이름을 안다. 스밍, 좋아요, DM, 굿즈 이런 말들. 간혹 어떤 말들은 나도 약간 자신 없어서 검색을 해봐야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이해하고 엄마에게 알려줄 수가 있다.


어린 날, 나에게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알려주었던 엄마에게 이젠 나도,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젊게 되었고 엄마는 흰머리 염색을 주기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린 서로 말 가르쳐주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함께할 시간 동안, 내가 가르쳐줄 말들의 수가 결코 엄마가 가르쳐준 모든 말들의 수를 넘어설 수 없겠지. 그러니까 가끔은 당황스럽고 가끔은 귀찮은 마음이 피어나도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어드려야지. 하면서... 봄을 알리고 있는 산수유나무를 바라보았다. 풋- 하고 웃음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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