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나의 성실한 단념
(출근길 단상)
개나리 노란 꽃그늘은 어느새 초록빛 그늘로 바뀌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켠 나른한 봄의 자락을 걸으며 꽃이 지고 초록이 자라난 풍경을 본다. 계절은 성실해서 자기만의 속도로 조금은 빠르고 조금은 더디게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어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 꽃 피웠던 마음은 자연스레 다음을 맞이한다. 계절의 성실을 믿는 것은, 당연할 마음의 행방을 믿게 해 준다. 그렇게 차곡차곡 무수한 계절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됨을 매일 목격한다. 계절만큼이나 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내 속도를 존중하는 것 하나뿐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무 가지를 친다. 가지를 자르는 일은 아픈 일이고 이별하는 일이지만 다음을 약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웃자란 가지들을 과감히 보내주고 나면은 다음 계절엔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꽃송이를 보여줄 테니. 가지 치기는 스스로를 자르며 더 나은 생을 도모하는 일이다.
어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웃자란 마음을 단념한다. 단념이란 실로 매정하고 아픈 일이다. 매번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매번, 단념 후엔 결국 더 튼튼히 자란 마음을 보았기에 결국 오늘도 나는 단념하기를 쉬지 않는다. 마음을 자른다는 것은 매정해 보이지만 다음과 내일을 믿는 일이기도 하다. 더 나은 생을 도모하는 일인 것이다.
하여 봄은, 작별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작별은 영영 익숙해지는 법이 없을 테고 그래서 더 나은 내일이나 다음을 믿는 것은 눈물 없인 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눈물이 나서 울다 보면 성실하신 계절께서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실 테니 그땐 또 맑게 웃게 되겠지.
그래서 이제는 눈물이 나더라도 산뜻한 마음으로 굿(Good) 바이(bye)를 전해 본다. 오 라일락, 꽃 지는 날 good bye 이런 결말이 어울려. 안녕, 꽃잎 같은 안녕.
라일락(LILAC) - 아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