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도 나약함도 아닌
예전에 한 심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사례가 있다. 어느 딸이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있어서 방에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그 딸은 방 안에서만 생활을 했는데, 방에 들어와 쓰레기를 치우던 엄마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도 같이 버려줘요." 교수님은 이게 '우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 자신을 방에 널려 버려져야 할 쓰레기와 동일시하며 괴로움에 빠져있던 사례 속 딸의 마음의 깊이를 채 헤아리기엔 당시 나에게 그 이야기가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느낌을 자주 느낀다.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것은 크게 다음과 같다.
출근하는 것, 원고를 쓰는 것, 깨어 있는 것
난 원래 마감 시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시간에 쫓겨서 쓰면 나는 더 나은 것을 쓰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마감 시간보단 늘 빨리 원고를 마쳤다. 또, 필요하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매달려 긴 원고를 완성하는 것도 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점만 잡는다면 끌려들어 가듯 쭈르륵 글을 쓰기도 했다. 좋은 글은 성실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하기보다는 내가 얼마만큼이나 미리 붙잡고 씨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감이 다가와도 그게 나에게 어떤 자극이 되지 못한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마감 압박보다 더 커다란 무기력의 파도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두려움이 훨씬 강하다.
더 이상 나는 성실할 수 없다.
모니터 앞에 앉아 고쳐야 할 글을 열어놓고 숨이 턱 막혀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머릿속엔 이미 그림이 다 있는데, 조금만 몰입하면 맘에 들던 들지 않던 결과를 낼 수는 있는데. 왜 그 한 글자 쓰는 게 어려운 건지. 지난날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글을 써냈던 나는 이제 없다. 그저 침대에 누워서 잠들고 싶다. 아, 이건 정말 건강하지 못한 생각인 걸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그렇게 나를 달래듯 시간을 보내면 약의 효과와 함께 어떻게든 무엇이든 써내게 된다.
누가 보면 내가 참 게을러 보이려나. 아님 너무 나약해 보이려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그 마음의 소용돌이가 얼마나 지배적이고 강력한지. 방 안에 누워 자신을 쓰레기에 비춰보며 눈물만 흘리던 사례 속 딸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그것은 게으름이나 나약함과는 다른 것이다.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이다.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게 되면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질주하듯 달린다든가, 계단을 능숙하게 오른다거나, 축구 같은 운동에 참여하거나... 절대로 할 수가 없다. 게으르거나 나약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아프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아픈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아파서도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언젠가는 나아야 하기 때문에 늘 그 상태에만 머무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넘어졌을 때 충분히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을 때까지 나를 부추기진 말아야겠다. 세상 다른 누군가가 나를 게으르고 나약하게 본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만큼은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자괴감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아픈 나를 돌볼 줄도 알아야겠다.
이 시간도, 흐른다.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