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모시고 큰 병원에 다녀온 후

by 그랬구나

큰 병원의 진료는 나이 든 엄마를 얼마나 늙었는지 철저히 객관화시키는 작업이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에겐 슬픔의 시간이었다.


당혹스러움


"엑스레이 상 이 부분에 결석이 있어 보입니다. 체외충격파로......."

친절하신 엄마의 담당 교수님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교수님 앞에 앉은 우리 엄마가 아닌, 엄마 뒤에 서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앉아있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나와 담당 교수님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으니

엄마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보호받는 노인 취급을 받는 엄마가 속상하진 않을까 싶어서 차마 엄마 표정을 바라보지 못했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얘기해서 기분이 좀 그랬어. 엄마에게 말해주면 좋았을 것 같아."


엄마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늙었고, 너는 젊으니까 너한테 말하면 더 빨리 이해할 것 같았나 봐. 뭐 어때."



슬픔


병원에 도착해서 도착확인을 하는 시스템. 환자 등록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엑스레이는 지하에 가서 찍어야 하고, 주사는 3층에 가서 맞아야 한다.

기계에서 수납하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 밖 약국에 간다.


이 모든 게 엄마 혼자 하기엔 더듬더듬.

"어휴, 엄마 이제 너 없으면 큰 병원 못 다니겠다."


내 키가 엄마 허리까지도 안 오던 꼬맹이시절.

엄마가 입은 치마가 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았던 그때.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서울의 지하철을 처음 타봤다.

아직도 기억나는 충무로역.

그 복잡한 서울의 지하철에서도 단단하게 나를 이끌던 손이었는데

그 손이 언제 이렇게 노쇠해졌나.


집에 가다 졸리면 업히던 엄마의 등.

너무 포근하고 든든하고 좋았는데, 그 엄마가 언제 저렇게 작아졌을까.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는 엄마는 바지를 갈아입을 때 한 발로 균형을 잡기도 어려웠다.

엄마는 몸이 어디 아픈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드니 그렇다고 했다.

그제야 병원에 수도 없이 붙어있는 낙상주의 경고 문구가 이해가 되었다.


엄마의 담당교수가 왜 나를 보고 설명을 했나 이제야 이해가 갔다.

친절하지만 빠르게 많은 양의 정보를 설명해 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엄마는 많이 담아내지 못했다.

곁에 내가 있어서 나를 의지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라, 엄마가 나이 드셨음을 하루이틀 느낀 건 아니지만

큰 병원에서의 엄마는 정말 많이 나이가 많이 든 엄마였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나 늙었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마음이 아렸다.



두통


엄마를 모시고 사람이 그득한 큰 병원 여기저기 다니며

담당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수많은 정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초집중하며 듣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다음 일정을 나의 아이들 등하교 일정과 나의 스케줄과 엄마의 스케줄을 고려하여 잡고, 작은 아이 픽업에 늦을세라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오니 두통이 찾아왔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닌데 너무도 피곤했다.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성격상 신경을 적당히 쓰는 게 잘 안된다.



걱정

엄마가 옷을 갈아입는데도 휘청거리더라는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면서

나는 딸이 없어서 나중에 여자 탈의실에 따라가 줄 사람도 없는데 어쩌지 했더니

남편이 두 가지 방법이 있단다.


첫 번째는 병원 VIP가 되어서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면 되고

두 번째는 두 아들 중 한 명을 의사로 만들어서 진료를 받으면 된단다.


옆에서 듣던 아이들마저 아빠 MBTI가 F인 게 말이 안 된다며 아빠는 T임에 틀림이 없다고 한다.


남편! 병원직원이 에스코트를 해줘도 탈의실 앞까지이고, 아들이 의사여도 본인 일하느라 바빠서 와보지도 못할 것 같은데.

됐고. 안 아프도록 노력할 거야 최대한.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느꼈다.



다행히도 엄마는 여기 병원에 다닌 이후로 증상이 많이 호전되셨다.

한 겨울에 시작한 엄마의 병원 진료는 봄이 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엄마도 나도 추운 날씨만큼이나 바짝 긴장하여 병원을 다녔는데

이제 엄마에게는 딸을 만나러 오는 편안한 나들이가 되었다.


그래도 큰 병원은 그만 다니고 싶다.

얼른 치료가 마무리되어 동네 의원에서 관리받는 게 엄마와 나의 목표이다.

교수님 우리 제발 그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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