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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Apr 25. 2023

정말 겁도 없이 아이를 낳았구나

"엄마, 난 친구가 없어."

느닷없는 첫째의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저학년도 아니고 이제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는 친구관계. 워낙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라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철렁 내려간 심장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줄 모른다.  마침, 시간 맞춰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 물어볼 수도 없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집을 나왔다. 


화창한 봄날 버스 밖 풍경을 보며 '내가 정말 겁도 없이 아이를 낳았구나.'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된 일인지는 정말 몰랐다. 내가 겪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이가 겪는걸 옆에서 지켜보려니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 내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되는 일들 투성이다. 많은 일들이 바람처럼 아이와 나를 흔들고 지나가야만 아이도 나도 성숙된다는 건 알겠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아프다. 




주말, 남편과의 산책에 나섰다. 산책길에 줄지어 나무들이 봄날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한 여름엔 억세디 억센 나뭇잎도 4월엔 작고 보드라운 연둣빛 여리여리 한 잎이다. 


그 어린 나뭇잎을 보며 첫째 아이를 떠올렸다. 


그래, 누구나 어린잎으로 태어나지만,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빛을 맞으며 강인하고 두터운 초록잎이 되겠지.
처음부터 두터운 초록잎으로 나올 순 없겠지. 

엄마인 나는 굵은 줄기가 되어 어린잎이 흔들릴 때 굳건히 버티고 있어줘야겠구나. 

끊임없이 물과 양분을 어린잎에 공급해 주면서도 온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태양 빛을 받는 건 어린잎 몫으로 남겨둬야겠구나. 


어린잎에게 양분을 줄 수 있는 굵은 줄기가 되고자 오늘도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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