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독립출판의 바람이 급물살처럼 타고 들어왔다. 나 역시 그 파도에 편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출판업계는 불황이고, 하루에 새롭게 시작되는 서점만큼이나 문을 닫는 서점도 적지 않다. 작고 무거운 이 책이란 것이 수익구조로 따지면 쉽지 않은 지금,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필름 카메라도 사람들 손에서 점점 멀어지는 녀석이기도 했고, 책이라는 개체도 마찬가지로 사람들 손에서 점점 멀어지는 녀석이다 보니 둘이 매치해서 한 공간에 소개하고 판매하면 괜찮겠다.
(마이크, 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첫 번째 입고, 56p)
아마 이렇게 시작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작은 필름 가게에서 양재에서 충무로, 해방촌으로 옮겨가며 10년간 독립출판물의 보고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어쩌면 주류라고 칭하는 것들보다는 그 옆길을 걸으며 조금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주제를 다룬 독립출판물. 세련되지는 않아도 들꽃을 심어놓은 흙처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책방이었을 것이다.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의 시장보다는, 저자가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투박하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었기에 독립출판물이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강남이라는 번잡하고 모든 것이 즐비한 대로변에 이런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자리한다는 것은 책방의 대표를 포함하여 이 책방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랍고, 반가운 마음일 것이다. 더불어 강남이라는 건조한 공기 속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정화작용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응원하고 있을 것 같다.
스토리지북앤필름_해방촌은 다소 협소한 공간에 여러 독립출판물이 테트리스 조각맞춤처럼 올망졸망 여기저기 놓여있기도 하고, 인센스 향이 어우러져 개인적으로 네팔 카트만두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이 곳이 강남점으로 옮겨지면서 몇 배로 늘어난 공간이 어떤 색을 입을지 개인적으로 참 많이 궁금했는데, 모든 책들이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독립출판물은 출판업 내에서도 책다운 책이라는 정통성이라는 기준과 함께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글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더라도, 이 공간이 여전히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누군가에게는 치유와 쉼의 공간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책을 낸다는 건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 같아요. 책을 내보고 싶은데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사실 책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특정한 사람들만의 분야는 결코 아니에요. 손으로 직접 그려서 자르고 끈으로 엮어도 책이잖아요. 다만 누구나 처음부터 잘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해 너무 큰 부담을 갖는 것 같아요. 저는 결과물의 질보다 일단은 자기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희열을 느끼는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 경험이 있다면 조금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과 열정은 자연스럽게 발전해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