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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Nov 30. 2019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좋다.

어릴 때 대부분 우리는 너는 특별해 -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나도 그렇게 자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크나 큰 열등감이 풍선처럼 커지는 만큼 

남들이 나보다 못하면 내가 더 잘났다고 하고 싶었고

남들이 나보다 잘하면 질투하고 그랬다.  

 

가고 싶었던 회사에 1년 넘게 준비했다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고 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죽고 싶었다.

죽을 수는 없었으니 안 먹었다.

 

살이 10킬로가 넘게 빠졌고 결국엔 결핵에 걸렸었다.

한참 안 먹을 때는 작은 감자 3알을 아침 겸 점심에 먹고

저녁에는 녹차만 끓여서 주야장천 먹었다.

바쁘게 일도 하는 중이었는데 그냥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오죽하면 태어날 때부터 마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조차 나한테

갑자기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말라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말랐다는 자각조차 하고 있지 못했었다.


결국 내 유학을 1년 미루게 한 결핵이 왔고 9개월간 약을 먹어야 했다.   


그 힘들고 죽을 것 같던 20대 후반을 잘 살아남아

서른이 되어보니 스무 살에 상상했던 화려한 서른 살의 나는 없고  

그냥 뭐 내세울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서른의 내가 되었다.  

내가 잘나지 않고 참 평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I am nothing.  

I am not special.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었지만, 특별하지 않으니까 조금 더 겸손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 열등감도 냉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더 노력하게 되었고  

특별하지 않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사는 것은 별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서울대를 나오건 하버드대를 나오건 -  

엄청 잘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은 삶을 그저 살뿐이다. 


돈을 엄청 많이 벌든지 명예가 많아도 다들 그냥 힘들게 매일을 사는 사람들 일뿐이다.   

이번 생에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각자의 시간대로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호주에서 애 키우면서 간호사로 간간히 일하지만,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냥 호주에서 사는 월급쟁이 직장인이자 아줌마 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호주에서 그 어려운 간호 공부해서 호주 간호사가 되고

덕분에 영주권 받은 것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잘해줘서 고맙고,  

또 주변에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행운을 지금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자각은

자신이 바닥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바닥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을 더 노력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


그래도 삶은 충분히 재미있다.  


정말 그렇다.



Photo by Aziz Achar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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