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3권 읽으면 디지털카메라를 빌려주고 쓰는 건 그냥 내버려 두어요.
도대체 언제쯤 읽기 독립을 할는지.
우리 첫째는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내 옆에 딱 붙어서 책을 읽는데 아마도 이렇게 내가 읽어주는 것이
아이에게는 나를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첫째는 요즘 한글을 잘 쓰고 곧잘 읽는다.
쉬운 책을 몇 번 읽혀봤는데
스스로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한글을 읽게 하지는 않는다.
굳이 읽게 한다면 제목을 읽게 한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서랍 속에 처박아뒀던
구형 디지털카메라가 생각났다.
스스로 고른 쉬운 책을 3권 골라서 다 읽으면
하루 동안 카메라를 대여해주겠다고 했더니
쉬운 책을 바로 가져와서 내 앞에서 떠듬떠듬 다 읽었다.
다 읽고 신나게 카메라로 엉망인 사진들을 찍었는데
보니 꽤 생동감이 있었다.
한글은 갑자기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쓴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 '신기한 스쿨버스-키즈'의 등장인물들을
좋아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쓰기도 하고
나와 남편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쓰기 공부를 전혀 시키지 않고 쓰라고 하지도 않는다.
혹시나 내가 공부를 시키고 가르쳤다가
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 봐
서로를 위해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곧잘 쓰니 다행이다.
아주 자주 철자가 틀리지만 그래도 고쳐주지 않는다.
알아서 책을 읽다가 배우겠지 하는 생각이다.
행여나 내가 고쳐준다고 지적했다가
그 지적에 아이가 마음이 다칠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쓰다 보면 한글을 급격히 잊어간다고 한다.
우리 첫째가 한글을 계속 쓰고
나와 한글로 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내 바람이
너무 큰 욕심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신이여, 뜻대로 하소서.
안되면 어쩔 수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