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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Sep 01. 2020

손절자들이여, 날 다시 찾지 마오.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스쳐 지나갑시다. 촌스럽지 않게.

Photo by Jonathan Kemper on Unsplash



난 미니멀리즘을 좋아한다.

미니멀리즘은 요즘 내 육아와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처럼

미니멀리즘에서 버리는 것은 미니멀리즘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난 인간관계에서도 미니멀리즘을 한다.

그 사람을 만날 때 편하고 설레지 않는다면 뭐 하러 만나는 가.

서로 만날 때 뭔가 에너지가 생기고 즐거워야 만나는 것이 난 좋다.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돈은 아직 안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애들 둘 육아나 우리 남편과 내 최측근들을 챙기기만으로도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설레지 않고 편하지 않으면 다 손절한다.

물론, 손절도 당한다.


손절을 당하는 과정에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손절을 막상 당하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괜찮다.


어차피 스쳐 지나가는 인연,

내가 손절하는 수고를 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분명 날 손절한 것이 분명한 제스처를 몇 번 취해서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손절자가 다시 만나자고 하면 당황스럽다.


내가 시간이 넘쳐서 그 손절자를 위해서

그 자리에 영원히 있어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연락이 온다.


좁은 브리즈번 한인 커뮤니티에서

'너 나 손절했잖아? 날 그렇게 바람 맞히고도 어떻게 다시 나한테 연락을 해?'라고 따져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좋게 좋게 내가 육아 때문에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널 만날 수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한다.

(일부분 사실이다. 애 둘 육아 때문에 누굴 못 만난다.)


날 손절한 사람이라고 해서 굳이 감정을 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좁은 브리즈번에서 언젠가 만난다고 하더라고

기쁘게 웃으며 잘 지냈냐며 안부인사를 할 수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언제 시간 내서 다시 만나자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하유지 작가님이 쓴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에서 미지는 학교를 가라고 강요하는

엄마에게 자살소동까지 일으키며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 알지도 못하는 애들하고 일 년씩 이 년씩 묶여 지내지 않을 거야. 친구 없는 걸 불편해하는 척하면서 나하고만 친해지는 짓,  그만둘래.
내 맘에 드는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싶어. 난 그 사람들을 네모 말고 동그라미 속에서 찾을 거야. 엄마도 알지? 교실은  네모나고 지구는 둥글다는 거."

미지는 저렇게 어린 나이에 결심을 했는데 이렇게 늙어서야 결심이 섰다. 


불편하고 설레지 않는 관계를 많이 맺기보다는

편하고 설레는 관계를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맺는 편을 선택할까 한다.


그러니 손절자들이여,

다시 연락하지 말고 잘 사시기를.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스쳐 지나갑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말이죠.


배운 사람들처럼 촌스럽지 않게.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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