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통 Dec 01. 2019

외로움은 그런 거야.

타협을 허용하지 않지.

Photo by Fabrizio Verrecchia on Unsplash


무한의 외로움을 겪었던 10대와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부셔보려고
이것저것 온갖 이불 킥을 할만한 일들을 다 하고 다녔던 20대를 지나 
지금은 외로움 그까짓 것쯤이야 라는 30대까지.


속이 텅 빈 고목나무 같았던 삶을 돌이켜보니 
외로움은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워서 돈을 써서 뭔가를 샀다고 치자,
그러면 돈을 쓴 순간은 새물건이 생겨서

그 순간은 너무 행복하고 좋다.
그 물건이 외로워서 산 물건인 것을

나는 알기에 그 물건을 볼 때마다 마음이 허전해진다.

외로워서 어떻게든 남자(아니면 친구)를 만났다고 치자.
이 남자에게 사랑을 받으면 내 외로움이 사라질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남자가

나에게 처음에 했던 노력과 같은 노력을 해주지 않는 것 같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그를 집착하고

나는 이렇게 사랑을 왜 구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더 큰 외로움이 나를 삼켜버리는 느낌이 든다.
혼자 있을 때 느꼈던 외로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외로움이 생겨버린다.

사랑이 고팠던 마음은 더 큰 사람이 고파진다.


외로워서 미친 듯이 술을 먹었다 치자.
술에 취하면 즐겁고 좋다가 술 너무 마셔서 울고 민폐 끼치고 
아침에 일어나면 속도 아프고 몸도 안 좋아진다.
아침에 띵한 머리를 붙잡고 다시 생각해 보니 여전히 난 외롭다.

한창 어릴 때 저런 뻘 짓을 다 하고 다녔었다.

지금 저 아이를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고 바보 같다.


내 경험 상 외로움은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어떻게든 없애버리기 위해서 이런저런 것을 해봤자 
다시 그 제자리로 돌아온다.

없애버렸다고 생각해도 없어지지 않고 내 옆에 찰싹 붙어있다.


그저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그 외로움도 나의 일부니까. 

소중한 내 일부니까 말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이 외로움을 없애야 한다는 집착이 사라졌다.
친구든 물건이든 술이든 외로워서 하는 것을 전부 그만뒀다.

그러다 보니 그냥 나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남편도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좋아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호주에 내 가족이 있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다 모이는 명절이나 
한국에 바로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길 때

내 상황 상 갈 수 없거나 하면 마음이 참 외로워진다.


우리 남편이 아무리 위로해도 이런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난 안다.
이민자라면 가지는 이런 외로움을 잘 알기에 그냥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런 외로움 때문에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난 이런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남자 친구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외로울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외로움은 언제나 그대 옆에 있다. 

그러니 외로움을 없앨 생각을 하지 말자.
타협을 하려고 하지 말자. 
그저 외롭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래야 내가 외로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나를 감싸 안게 된다. 

사람이니까 외로운 거다.
그러니까 너무 외롭다고 슬퍼말기를.

토닥토닥. 


작가의 이전글 이 세 가지를 얻어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