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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A양에게 연락이 왔다.
열심히 간호사로 커리어를 맹렬히 쌓고 있는 멋진 싱글여성인 그녀가
어떤 일 때문에 친구가 필요했는데 지금 부를 친구가 없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결국에는 한 친구가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커플/결혼/가족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부러우면서 어떻게 나는 왜 저런 생활을 못하는 가 하고 마음이 허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나이도 어린데 벌써 집도 샀고!!
일도 너무 잘하고 내년에 석사도 공부한다는
열정을 불태우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위로를 해 줄 겸 그녀보다
조금 더 나이 먹은 언니로서 오지랖을 부렸다.
인생에는 누구든 걸어가는 사막이 있다고.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있는 행복한 이야기들과 사진들은
그 사람들이 자신이 건너야 하는 황폐한 사막을 걸어가다가
잠깐씩 보이는 오아시스들을 포착해서 올려놓은 것이어서
그들의 인생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행복해 보이는 나 조차도 일상을 살면서
겪는 어떤 사막을 걸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막이 우리 사이의 비밀이라는 말도 덧붙여서)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파삭 메마르고 넓고 깊어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던 나만의 사막을 푹푹 빠지는 모래 속으로
내 발걸음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살았던 적도 많았다.
어떻게 해도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막막함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느꼈던 그 무거운 부담감과 외로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나보다 더 편하고 쉬워 보여서 힘이 더 들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의 인생도 모르겠고
그저 죽어라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그때였다.
내가 원하는 물과 꿀이 있는 저 오아시스는 눈앞에 신기루처럼 있는데
손을 내밀어도 도저히 잡히지 않는 막막함에 이런 인생이 참 거지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의 인생을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히 바라보니 그들도 길고 긴 사막을 웃는 낯으로
애써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힘든 만큼 그들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저들의 인생도 나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막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활비를 매달 대야 하는 부모님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도대체 맞지 않는 시댁과 남의 편(남편) 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모아도 모아도 모아지지 않는 저축액 일 수도 있다.
각자 걸어가는 사막의 깊이와 황폐함은 자신만이 알 수 있고 해결도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그러니, 단지 사막을 제대로 견뎌내어 건넜음을 마지막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인생에서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오아시스만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사막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영주권일 수도 있고 유학을 위해서 벌기 위한 엄청난 금액일 수도 있다.
해결이 안 되는 가족일 수도 있고. 앞으로 만나고 싶은 배우자 일 수도 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인생이 주는 그 사막을 꿋꿋이 건너다보면
오아시스로 가는 길이 보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차피 건너야 할 사막이라면 즐겁게 건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현재 그 망망대해 같았던 사막은 조금 크기가 줄어들었다.
어떻게든 빠져나와서 오아시스로 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작아졌다.
내 오아시스에는 우리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다들 건강하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으니 이만하면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라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해서 그런 것 같다.
역시 사막의 크기를 줄이는 것에는
하루를 만족하고 행복하게 감사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듯하다.
그대의 오아시스를 꼭 찾으시기를.
못 찾아도 사막을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A양.
조금만 기다려보시게.
그 사막을 건너서 어떤 오아시스에서 어떤 인연을 언제 어찌 만나게 될지
인생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네.
내 인생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