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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Dec 05. 2020

포기도 가르쳐야 한다.

포기하고 행복해지는 편이 고집하고 불행해지는 편 보다 낫다.


Photo by Andreas Weiland on Unsplash


인생은 수많은 성공적인 경험이 연결되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면 분명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았던 때였다.

그래서 이걸 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도리어 내 인생이 피폐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냥 포기해도 되었는데 주변의 기대와 나의 욕심 때문에

무식하게 계속 도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서 내가 두 번 크게 포기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승무원 되겠다고

에미레이트 항공에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져서

1년 동안 그 항공에 면접도 못 보는 상황이었을 때다.


떨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일주일 만에 직장 구하고 애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승무원 준비를 하다가

어느 순간 이제 승무원 일은 포기하자는 생각을 했었다.


해볼만큼 다 해봤고 이제는 마음 떨리게

면접관의 눈에 들어야 하는 면접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를 하니까 다음 길이 보였다.

덕분에 돈 열심히 벌어서 호주에 간호 공부하러 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간호사 일을 일단 포기했을 때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일을 어떻게든 해야 할지

아니면 간호사 일을 육아를 위해서 포기해야 할지 엄청 고민을 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고민한 시간만 4년이 넘는 것 같다.


마지막 간호사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이 태평하고 편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호사 일도 일단은 포기했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민이 없어졌다.


그렇게 포기를 하니 또 다른 길이 보인다.

글로 밥을 먹고살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쉽게 포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볍고 바삭하게 말이다.


안될 것 같은데 스스로는 될 것 같다거나 절대 놓아서는 안된다는

욕심 때문에 잡고 있어서 그런지 저때는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냥 포기해.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줬다면

내가 방황하는 시간이 좀 줄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에 조금 더 행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과감하게 포기하라고 한다.

종이와 테이프가 붙고 엉켜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높은 철봉에 호기롭게 올라갔다가 이거 해야 하는데 하면서 울을 때 (내가 달려가서 내려주지만)  

읽던 책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왔는데 도저히 모를 때는 (물론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포기하라고 과감하게 말해준다.


내가 포기하라고 한다고 애들이 포기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 말을 안 듣는다. 이 시기 애들은 다 그렇지 않나... 눈물이...)


우리 애들은 다른 테이프를 잘라서 또다시 하고

철봉은 좀 크면 또 시도해 보고

단어는 내가 가르쳐주면 또 배운다.


난 아이들이 포기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싶다.

그런다고 인생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며

포기해도 삶의 다른 길과 문이 열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괜찮다고 알려주고 싶다.


하다가 안되어서 포기를 하다 보니

내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호주에서 간호사로 영주권 받고

만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호주인 남편 만나서 애 낳고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애들도 포기와 재시도라는 과정을 거쳐

자신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어떤 길에 어떻게든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들면 포기를 해서 행복한 편이

포기하지 않고 힘든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애들아, 포기해.

그리고 행복해지렴.


엄마의 마음으로 그렇게 바라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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