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통 Jan 14. 2021

네 식대로 인생 낭비하렴.

내 식대로 가 아니라. 

Photo by Lukas Blazek on Unsplash


우리 엄마가 정말 열심히 나를 키운 것은 인정한다.

우리 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엄마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이 너무 안타까워서 

더 빠른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요리조리 가라고 알려주려고 했던 것도 

내가 엄마가 된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게 계속 공부만 하라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한심하게 봤다.

덕분에 난 꽤 오랫동안 한심한 사람이 되어 살았다.


내 식대로 사는 것을 엄마는 너무 싫었고,

난 엄마 식대로 사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냥 미성년자로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그 시기에는 

힘들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생각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때 내 황금 같은 스무 해를 아무 생각 없이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어려서 엄마 식대로도 내 식대로도 제대로 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가 하라고 하든 말든 내 식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안 했다.

엄마 때문에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상황에 반응하고 그 선택을 한 것은 나였다. 


내 식대로 마구 낭비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20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가 내 인생을 내 식대로 낭비하게 내버려 뒀으면 

지금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모든 것들을 더 일찍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시간은 인간에게 힘이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서 꾸준히 하면 

그것이 땅 파는 일이여도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형태로 나를 먹여 살린다.

아니 먹여 살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해 준다.

배우고 몰입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서 완벽성을 추구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런데 50살에 그 일을 발견해서 10-20년 하는 것보다 

6살에 그 일을 발견해서 50년 단련하는 것이 훨씬 더 그 일을 잘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애들에게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했던 것과 반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게 내버려 둔다.


브리즈번은 영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락다운을 했다. 

10일 동안은 조심해야 해서 웬만하면 집에 있었다. 

요즘 첫째가 선크림을 바르기 귀찮고 

밖이 너무 더워서 집에서 놀려고 한다.

덕분에 둘째도 집에서 논다.

집에서 우리 애들이 노는 것을 보면 정말 비생산적이다.


종이를 찢었다가 글씨를 썼다가 책으로 탑을 만들었다가 한다.

이건 뭘 할 때고 주로 멍 때리며 누워있는다.


집에서는 빈둥빈둥하는 것이 최고야!라고 내가 말했다고 그런지 

우리 애들은 빈둥빈둥하면서 바닥을 굴러다닌다.


첫째의 달콤한 고백 

그러다가 갑자기 종이를 피더니 엄마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첫째는 한글로 한참을 쓴다.

빈둥대다가 둘째는 풀썩 주저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마구 꺼내서 한참을 본다.


그렇게 그들의 시간을 비생산적이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낭비한다.

그 모습이 난 참으로 흐뭇하다. 


인생은 누구나 자신의 식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 

이 시간에는 학원에 가야 하고 이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므로 어떻게 자기 시간을 써야 할지는 

철저히 자신들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쓰는 시간이 비록 낭비가 될지라도 그것 또한 그들의 낭비일 뿐이다. 


오늘도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비생산적이고 행복하게 낭비하는지 보면서 

나도 옆에서 빈둥빈둥 거리며 내 책이나 읽어야겠다.


더운 여름에는 맛있는 것 먹으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최고다. 








작가의 이전글 첫째의 반이 배정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