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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Jun 05. 2021

양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가르치고 보여줄 뿐이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첫째가 여전히 둘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둘은 여전히 꽁냥꽁냥 하고 가끔은 싸우지만 대체적으로 사이가 좋다.


둘째는 오빠가 학교에 가서 심심하다거나 

오빠가 없어서 무섭다거나 할 때가 있다. (내가 케이크 만들 때 믹서 돌릴 때만!)


이렇게 사이가 좋으니까 일단 내가 좀 편하다.

둘이 같이 있어서 부담이 안되고 차라리 안심이 된다.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첫째에게 내가 첫째란 이유로 양보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영어와 한국어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각 언어를 말할 때 지위(position)가 있다 없다고 생각된다.

한국어는 그 사람의 포지션을 정확히 모르면 상대를 부를 수도 없지만 

영어는 그 사람의 포지션을 몰라도 나이가 어리든 많든 you라는 말로 부를 수 있다.


영어에서 첫째가 가족 내에서 가지는 지위는 한국어에서 가지는 지위와 현저히 낮다고 본다.

한국어를 쓰는 가정에서 첫째의 지위와 책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미래의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기대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첫째니까 네가 잘되어야지라든지 첫째니까 양보를 해야 한다던지 말이다.


내가 첫째여서 그런지 이게 얼마나 부당한지 잘 알고 있다.

첫째이기 때문에 왜 내가 잘되어야 하는가.

나는 나 이기 때문에 잘되어야 하고 

내가 양보를 하고 싶어야 하기 때문에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첫째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육아를 한국어로 하더라도 이런 포지션의 폐해를 최대한 배제하고 말한다.



우리 집 아이들의 장난감은 어느 정도 누구의 것이라고 정해진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외부에서 아이들 모두를 위해서 들어온 장난감은 다 같이 놀지만 

큰 일을 해냈을 때마다 (특히, 토일렛 트레이닝!) 받는 장난감은 누구의 소유라고 정해져 있다.


우리 집은 양보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인정을 해준다.

만약 첫째가 둘째의 인형(토일렛 트레이닝 성공으로 받은!)을 가지고 놀았는데 

둘째가 가지고 싶어 한다면 첫째에게 빨리 놀고 주라고 한다.

첫째의 장난감을 둘째가 가지고 놀 때도 똑같이 한다.


첫째가 나이가 많고 둘째가 어리고 그런 것 없다. 

어차피 내 기준에는 둘 다 너무 어리니까.


하지만 공동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서로 양보를 할 수 있게 가르쳐준다.

첫째나 둘째나 양보에 대해서 별로 억압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성향이 그래서 일지 몰라도 

서로 잘 양보해 주는 편이다.


양보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조금 기다려주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거래를 제안한다.

양보해 주면 뭐 해줄게 - 이런 식으로. 아니면 뭐 안 해준다 - 이런 식으로.

대부분은 협상이 잘 이뤄진다.


이렇게 하는 것과 동시에 양보를 보여준다.

우리 남편과 나는 식탁에서 맛있는 것을 서로에게 자주 양보한다.

나는 우리 남편이 맛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다 주고 못 먹을까 봐 그렇고 

우리 남편도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아서 밥 먹을 때 서로 챙긴다.


그렇게 했더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양보를 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첫째여서 둘째여서 양보를 하는 것은 최악의 육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포지션을 육아에 강요하는 순간 

아이들은 그 자신이 없어지고 첫째 둘째만 남는다.

첫째가 아니면 둘째가 아니면 그 가치가 반감된다고 볼 수 있다.


양보를 절대 강요하지 말라.

양보는 인내를 가지고 즐겁게!(이게 포인트!)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이 

아이가 받아들이기도 엄마 아빠가 가르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육아 이렇게 편하게 가야 한다. 

그래야 오래 편안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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