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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Dec 08. 2019

너와 나는 다르지만 받아들일게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지금부터라도 노력할게.

Photo by Ankush Minda on Unsplash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때 이쁘다.


그런데 그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때가 과연 내 기준을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강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을 할 때가 있다.


우리 첫째는 아침식사를 많이 안 먹는다.

나는 그걸 눈치채지를 못하고, 나처럼 아침에는 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국에 밥을 꼭꼭 해서 줬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할 때마다 멍 때리고 안 먹는 첫째한테 -빨리 먹어- 소리를

한 30번은 했던 것 같다.

결국, 어느 아침에 내가 폭발을 했다.


도대체 내가 왜 네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먹어 먹어 소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내일부터는 그냥 과일만 먹으라고 했다. 화를 내고도 너무 내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댔다.


당연히, 첫째는 화를 내는 내가 무서워서 울었다. 밥 먹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나중에 내 기분이 풀리고, 첫째 아이 양치를 내가 하면서 사과를 했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해.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진짜 우리 첫째가 엄마가 화를 내서 무서웠겠다.

엄마가 무서워서 울었어?  

-아니야. 엄마. 엄마 안 무서웠어. 그런데 내가 왜 울었지?! 헤헤헤 

-엄마를 용서해 주겠어?

-엄마 괜찮아. 

그러면서 웃어줬다.


내가 이렇게 착한 애한테  내 기준에 맞춰서 밥 많이 안 먹는다고 화를 냈다니.

진짜 난 쓰레기다 라는 처절한 반성을 했다.


남편한테 그날 있었던 일 말하고, 남편이랑 상의해서 그다음 날부터는 첫째가 원하는 대로 빵을 주기로 했다.

식빵 한 개에 버터 + 잼  발라서 준비해 줬더니, 크러스트까지 전부 다 먹었다.

먹는 동안에 -빨리 먹어-라는 소리를 막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단 한 번도 안 했는데도 다 먹었다.


그날 이후로 식빵 한 개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반개 정도 더 먹을 때도 있다.

아침에 주스를 마실 때도 있고 우유를 마실 때도 있고 첫째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먹게 놔뒀다.


그랬더니 아침이 다시 평화로워졌다.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먹어서 좋고, 나는 먹으라고 아이한테 채근하지 않아서 좋고,

빵 준비가 밥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서 또 좋다.


아침식사는 무조건 든든하게 밥을 먹어야지라든가

아침에 빵을 먹고 어떻게 살 수 있지?라는 내 식대로의 생각을 진즉에 버릴 것 그랬다.


아침에 든든하게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는 나와 다르게 첫째 아이는 가볍게 아침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 것을 일찍 받아들였다면 우리 사이의 실랑이도 없었을 테고, 내가 화를 내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빵은 나에게 무조건 간식인 관계로 여전히 어떻게

'아침에 빵 한 개 먹고 배부를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나와 다른 사람인 첫째가 원하는 것이 그렇다면 받아들이고 해주는 걸로 결정했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

내 기준을 엄마라고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

그걸 엄마는 가끔 잊는다.

앞으로 잊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게.

이번에도 용서해 줘서 고마워. 


*2023년 업데이트

요즘에는 식판에 있는 밥도 거뜬히 다 먹는 아이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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