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안 보여줘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 우리 애들은 왜 심심해하지 않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심심해서 애들을 데이케어에 보냈다는 엄마들을 만나면,
왜 우리 애들은 집에서 저렇게 빈둥빈둥 노는데 심심해하지 않지?! 하고 문득 궁금했다.
무리해서 놀아주면 내가 힘들어서 애들한테 화를 낸 적이 몇 번 있어서
놀아주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는 쪽을 택한다.
내가 체력이 좀 될 때 좀 놀아주지 웬만하면 최대한 내 체력을 보존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내가 재미있게 놀아줘서 애들이 안 심심해하는 것 같지 않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닌 것이,
내가 미니멀리즘에 빠진 후로는 대부분 덩치가 큰 장난감들은 다 치워버려서
가지고 놀 것도 별로 없다.
블록이나 기차놀이 같이 처분이 힘들어서 가지고 있는
큰 장난감들은 종종 주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가지고 놀고 싶다고 안 해서 정리해서 주로 창고에 넣어놓는다.
그런데 왜 우리 애들은 안 심심해하고 저렇게 주야장천 신나게 놀까를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답인 것 같다.
그 엄마들이랑 이야기할 때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는 엄마는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거의 안 보여줘서 그런 것 같다로 내렸다.
우리 집은 TV가 없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이발할 때 빼고는 핸드폰도 안 보여준다.
어쩔 때는 핸드폰도 안보여주고 이발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싫다.
그걸 내가 마음 편히 볼 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화 안 내려고 TV를 설치하지 않고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예 내가 화를 내는 싹을 확 잘라버렸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나한테 핸드폰이나 TV를 보여달라고 하기보다는
심심한 책과 공원 탐방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주니까 포기한 것 같기도 하지만.
덕분에 우리 애들은 심심해하지 않는다.
우리 애들은 참 신기하게 재미있게 논다.
저번에는 통조림 가지고 놀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통조림을 다 꺼내 주었다.
통조림 통을 초집중해서 탑을 쌓아 올려 만들거나
다시 무너트렸다가 다시 또 쌓아 올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통조림 통을 굴려서 볼링 하는 것처럼 논다.
그러다가 그 통조림을 가지고
내가 한때 맥시멀리즘에 빠져서 첫째를 위해서 샀던
장난감 차 위에 올려놓고 옮기는 놀이도 한다.
통조림 통 7개 가지고 저렇게 잘 노는 애들이 우리 애들이다.
애들이 심심해서 데이케어에 가고 싶다고 해야 데이케어나 킨디를 보낼 텐데
집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다고 가고 싶어 하지 않으니 데이케어나 킨디를 보낼 수가 없다.
이러다가 학교도 못 보내는 것 아닐까 생각했으니
우리 첫째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연습을 벌써 하니 다행이다.
애가 TV 나 핸드폰을 본다고 뭐 그렇게 애가 나중에 잘못 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어릴 때 TV 진짜 많이 봤지만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안 보여주면 여러 가지로 득이 실보다 많다는 것은 내가 해보니까 알겠다.
미디어를 보여주는 시간을 줄이면 줄이는 만큼 아이가 놀 거리를 스스로 찾는다.
그렇게 놀거리를 찾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절대 심심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