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기억도 안 날 텐데 뭐 하러 신경을 쓰겠어.
요즘 인간관계도 미니멀리즘을 하고 있다.
1~2년 연락이 안 되고 있는 관계는 살짝 끊어주고,
집중을 해야 할 사람들만 내 옆에 채우고 있다.
요즘 내 인간관계에 관해서 스스로 정한 지침은 이렇다.
오는 사람 막고 가는 사람 잘 가라고 손 흔들어주기.
날 만나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고 고맙지만,
난 더 이상 함부로 인연을 맺고 싶지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내 인생에 지나갔던 사람들은 제발 다시 연락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다음에 길에 가다가 만나면 즐겁게 인사는 하겠지만,
딱 그 정도뿐인 걸로 정했다.
데이케어 안 보내고 애 둘 육아를 해서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맺었던 인연들이
잘 정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언젠가는 입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었던 옷들을
미니멀리즘 하면서 조금씩 다 버렸던 것처럼
지금 뭔가 어그러져서 안 만나는 사람을 내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요 근래 그런 인연 중에 한 명을 우연히 만나러 갔다.
먼저 만나자고 너무 반갑게 말하길래,
혹시나 해서 집에서 책 보고 싶다는
애들 설득해서 무리해서 나갔는데 역시나였다.
약속시간에 못 나온다며 연락이 왔다.
더 황당한 것은 집에서 아직도 자고 있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가볍게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기분이 너무 나빴다.
기본적인 시간 약속도 잘 안 지키는 (예전에도 그랬다) 사람을
왜 내가 다시 만나려고 나간다고 했을까 하는 자책이
그 친구에 대한 실망보다 더 컸다.
남편한테 속상해서 이야기했더니 이런 말을 해줬다.
'아내가 80살이 돼서 그 사람을 기억이나 할 것 같아요?
어차피 80살이 되면 기억도 안 날걸요."
이 말을 듣고 띵 했다.
나중에 어차피 기억도 안나는 인연 때문에
뭐 하러 아둔하게 속상해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살아오면서 진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중에 아직도 연락하는 사람도 몇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기억에도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좋았던 인연도 속상했던 인연도 있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 기억에는 없다.
이렇게 20대 때 만났던 사람들을 집중해서 생각해 봤다.
이제 겨우 2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나이가 80세가 되면 지금 맺고 있는 인연 중에서 스쳐가고 있는 인연들은
어차피 내 기억 속에서 없어지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 말대로 별일이 아니게 되었다.
앞으로는 내 나이 80세에 기억도 못할 걱정을 하고
나 나이 80세에 기억도 못할 인연을
혹시나 하면서 다시 맺으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나이 80세에는?라는 가정을 하면서 보면
인생 사는 것이 진짜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80세되면 기억도 안 날 것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흔들든지 흔들리지 말고,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