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운명대로 살아갈 테지
이 물건을 사면 삶이 환상적으로 바뀌는 상품들을
줄곧 팔아 대는 홈쇼핑을 빠져들게 본 적이 있다.
나야 돈이 없어서 잘 사지는 않았지만 그 현란한 판매기술이란.
볼 때마다 넋을 잃고 한참을 홈쇼핑 채널에서 방황했었다.
엄마라는 포지션은
어쩌면 그런 홈쇼핑 같은 환상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지면 뭔가 삶이 환상적으로 바뀔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내가 조금 이렇게 하면 우리 아이가 대단하게 바뀔 거야
또는 내가 이렇게 해주면
우리 아이는 나와 달리 클 거야 라는 생각을 엄마들은 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 생각이 정말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해도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5년 동안
최대한의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 첫 5년에 부모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평생을 사랑고파병에 걸리느냐 마느냐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서로 처음 새롭게 만나서,
첫 5년에 정립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
아마 평생을 가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 그 방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단단하고 든든한 관계를
전 인생을 걸쳐서 서로 만들어나갈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타인과의 관계에 초기 정립된 법칙들은
무의식적으로 계속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첫 5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외에
전적으로 내가 뭘 한다고
애들의 인생이 A가 될 것이
B가 짠 하고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만해도,
우리 엄마가 내 인생을 죽어라고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할 때는 바뀌지 않다가,
내가 깨달아서 스스로 바꾸니까 바뀐 케이스여서
그런 생각을 더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리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착한 딸이었다면,
분명 나는 호주에서 살고 있지도 않고
이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 엄마 말을 듣고 살았다면
그게 내 인생인가.
우리 엄마 욕망을 대리로 사는 대리인생이지.
그래서 우리 애들이
남한테 해 끼치지 않고
자신한테 해 끼치치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다.
그런데 해도 끼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긴다.
A 말고 B 방법으로 하면 더 편할 텐데
왜 저렇게 안 하는가 할 때는
아이에게 어서 편한 방법을 가르쳐주고
내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아이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우리 애들이 어떤 애들인가.
착하지 않은 나한테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바꾸려는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내 말이 더 효율적인데 왜 안 하니! 하는 분노와 짜증을
꿀꺽 삼키면서 계속 생각한다.
- 내버려 두어! 네 인생 아니야.
쟤들은 알아서 지들 인생을 살 거야.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분노가 잦아들며 짜증이 없어진다.
내 인생도 아닌데 내가 개입한다 한들 바뀔 리가 없다.
그게 바뀐다고 해서 아이한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렇게 바뀐 것은 대부분 아이보다
더 센 부모의 힘과 강요와 권력으로
아이가 바뀐 척하는 것 일 테니까.
스스로 깨달아서 바뀌어야만 아이들은 스스로 바뀌고,
자신의 인생을 알아서 살아간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생각에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 줄 것은
인생의 첫 5년을 바라봐주고,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 (부모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인생 즐겁게 사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등 따시고 배부르고
마음 편하게 해 주면 더 좋고 말이다.
오늘도 깊고 깊은 복식호흡을 하면서
'내버려 두어! 네 인생 아니야.
뭐! 지들 인생인데 뭐!'
라며 되뇌고 되뇐다.
휴우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