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는 아이를 잡아끌어주지는 않는다.
첫째 아이가 프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프렙은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면 학부모들이
같이 들어가서 아침 과제를 도와주곤 했다.
나도 우리 둘째를 데리고 첫째 아이를 봐주려고 들어갔었다.
아침에 들어가서 짧은 작문을 봐주고 작은 책을 하나 읽게 하는 것이었는데
아이 옆에 앉은 몇몇 아이들은 작문도 한 문장도 못하고
심지어 책도 안 읽고 그냥 연필을 잡고 앉아만 있었다.
부모님이 안 오시기도 했고
선생님들도 바쁘셔서 그 아이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아이들은 한 두 문장 쓰고 책도 안 읽고 그 시간을 보냈다.
뒤처지는 아이를 선생님이 멱살을 잡아서 끌어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의욕이 없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는 더더욱 독려해서 공부를 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2학년 아이 반에는 수업에 참여도 잘 안 하고 과제도 안 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가 몇 명 있다.
그래도 선생님은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이 말로는 안 한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둔다고 했다.
한국 같았으면 어떻게든 선생님이 아이를 끌고 갈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것 같은데
호주는 아닌 것 같다.
아이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면 그 의사를 존중해 주는 문화여서 그런 건지
안 하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시키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학습에 뒤처지는 아이를 선생님이 노력해서 끌고 가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학습을 잘하는 아이에게 더 많은 숙제를 내주지도 않는 마당에
선생님이 지금 하는 일도 많은데 더 많은 일을 할리가 없다.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 본 적은 없지만 사립학교는 돈을 내는 만큼
아이들에게 신경을 더 많이 써준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담임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공립이든 사립이든 학습적이든 사회성이든 잘하는 아이는 어딜 가나 잘한다.
잘 못하는 아이는 차라리 돈을 내는 만큼 신경을 써주는 사립을 보내든지
아니면 학교에서 뭘 더 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따로 학습적인 공부를 따로 더 시키든지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호주 학교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고 즐겁게 가서 안전하게 잘 놀다 오는 것만으로 난 만족한다.
기대를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법이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