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을 파헤치다 발견한 나의 추악함.
(2020년 12월 27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벌써 겨울, 12월의 끝, 연말이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떠들썩하던 2020년이 거의 다 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일이면 공장에 출근해야 한다.
(당시 난 산업복무요원으로 부품 공장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연휴 4일 중 마지막 날이라 빙어낚시를 갔다.
강화도 길산 낚시터에 갔다.
예배를 드리고 출발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저번 빙어낚시는 강원도로 갔었는데, 겨우 5마리 남짓을 잡았던 기억이 있었다.
불안했지만 예상보다 조과가 좋았다.
이번엔 날씨가 따뜻하여 얼음이 얼지 않았고, 그냥 좌대에 앉아서 강물에 낚시를 하였다.
놀랍게도 빙어가 그냥 육안으로도 많이 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냥 일회용 낚싯대의 넓은 부분으로 뜨면 잡히는 수준이었다.
그 방법으로 겨우 1분만에 첫 빙어를 잡았다.
낚시로 정정당당히 잡은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신났다.
떠서 잡고, 낚시대로도 잡고, 점점 마릿수가 채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난 그 과정에서 자만심에 찌든 자아를 보았다.
스스로 낚시 초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카드채비를 써봤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예전에 해봤던 건데, 당연히 잘 잡히겠지.'
일종의 자만이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멈출 수 없었고, 그것의 존재를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내 안에서 조용히 퍼져나가던 자만의 안개가 내 정신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졌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한 패닉 상태가 되었다.
시야와 생각마저 좁아졌다.
끝내 그 안개를 그치게 한 것은 내 스스로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자만의 대상이었던 ‘빙어 카드채비’였다.
채비줄이 꼬였고,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푸는데 애를 먹게 된 것이었다.
주변 사람이 볼까봐 쪽팔렸고, 괜시리 잘 잡고 있는 옆사람과 비교가 되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조바심이 날수록 줄은 더욱 더 풀리지 않았고, 껴놨던 미끼들도 빠지기 시작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나의 못난 민낯을 마주한 것이다.
갑자기 빙어낚시가 되게 막연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사실 그런 느낌은 나에게 익숙하다.
간혹 이런 감정이 들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느낌.'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서 막막한 느낌.'
혹자는 위의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분노와 짜증에서 어떻게 그런 감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냐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내 안의 굵직하게 박혀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자아상들은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렇기에 위의 감정들은 내가 인식하는 스스로의 나,
즉, '자발적이지 못한 나',
'의존적인 나',
'남들 눈치만 보는 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때때로 어떤 기척도 없이 내 정신을 침투해 지배한다.
이를 테면, 유튜브, 창업, 취업과 같은 진로를 생각할 때,
돈이 없는 상황에서 다음 집으로 어떻게 이사할지를 생각할 때,
들키고 싶지 않은걸 들켰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
내가 자신없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
무언가를 잘해내고 싶은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조차 모르겠을때,
만만하게 보거나 떵떵거리며 잘할 수 있다고 말해왔던 일을 막상 해보면 내 생각과 다르단걸 깨달을 때
등의 상황에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지금 최대한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으려 노력한다.
나는 너무 객관적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찌질한 겁쟁이다.
솔직함을 멋있어하지만 무언가를 숨기고,
경건함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을 외면하기 일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만 그를 위한 절실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속담 중에 ‘콩 심으면 콩나고, 팥 심으면 팥난다’는 속담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 속담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무슨 판타지 소설 속 기적, 또는 게임 속 캐릭터의 버그와 같은 비정상적인 기적이 항상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맹신하며 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의 최종 전략은 항상 ‘외면’이었다.
외면을 해서라도 누군가의 칭찬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 특별하다는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끄럽다.
동시에 걱정되고 불안하다.
이 글을 쓴 후에, 또 다시 나는 어려움과 하기 싫은 걸 마주할 때마다 외면이라는 깊은 심해로 잠수해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말이다.
난 나에게 마저도 솔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착한 척은 했어도, 무언가를 외면하고 숨기는 데에는 어느 눈치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좀 솔직해지자.
난 멋있어지고 싶고, 잘 살고 싶다.
찌질한 겁쟁이인데 욕심은 많다.
꿈은 별로 없고 꿔도 허황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욕심은 더럽게 많다.
무언가에 미련과 후회가 많다.
좀 마음을 비우고, 놓으며 살자.
힘들지 않게 웃으며 사는데도 인생이 아깝고 모자라다.
좀 웃자.
2025년 12월 초, 5년 전 이 글을 다시 읽었다.
이 글을 처음 읽은 느낌은 정말 두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업로드를 하는 건, 그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를 위해서이다.
2020년의 난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던 시기였다.
끊임 없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자기 비하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기까지 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과정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만약 당시의 문제점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지금 나이가 되어버렸다면?
여기서 얼마나 더 별로인 인간이 되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당시 부족하고 멍청한 내가 바뀔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연애의 힘 덕분이었다.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을(특히 자신의 추악함) 알게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당시는 위 사실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물론 여전히 난 자만과 겸손 사이 어딘가에서 허우적댄다.
매일 매일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르지만, 계속 노를 젓는다.
젓다가 노가 부러지면 고쳐도 보고, 나무를 깎아 새로 만들어보기도 한다.
팔이 힘에 부쳐 지치면, 같이 탄 사람이 대신 노를 저어주기도 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 감사함을 망각하지 않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앞으로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함께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