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 + 웃음 = ?

엘리베이터 거울 속 무표정의 사내를 보았다.

by 주택야독

(2020년 12월 28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웃는 사람


웃음은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하루 중 대부분 나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그 무표정 속에는 피곤이 있고, 무기력, 무관심이 있다.

마치 오아시스마저 말라버린 황폐한 사막과 같다.


과일과 음식이 종류마다 각자의 맛과 향기가 있듯, 사람에게도 사람마다 각자의 말과 표정이 있다.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과일이나 음식은 대체로 맛있고 향도 좋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을 끄는 호감형 인간은 친절하고 명확한 말과 온화하고 활기찬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난 적어도 호감형 인간은 아닌 듯 하다.

아무리 가기 싫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지금의 긴 인생을 돌아보았을때, 나의 무표정은 고작 군대 2년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이때의 난 부품 공장에서 산업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 무표정은 내 것이 맞았다.

난 아직 초록빛이 나는 떫은 감과 같고, 덜 구워진 돼지고기와 같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아직 덜 익고 덜 구워졌다는 것이다.

난 고작 24살이다.(현재는 서른을 한달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회색빛이라 했더라도, 당장 내일, 아니 1분, 1초 후부터 나에게 햇빛처럼 따뜻하고 넓은 빛이 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나의 가능성을 믿자.

웃으며 넘기자. 웃음으로 극복하고 견디자.

반대로 생각하면 웃지 못할 일이 없다.


요리도 하고 고양이 모래도 갈아주며, 정말 많은 집안일에 시달린 오늘.

여자친구가 문득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런 일로 짜증내지 않아.'


부끄러웠다.

난 겨우 이 정도의 인간이구나 싶단 생각에, 나 자신을 돌아봤다.

처음에는 그녀가 날 싫어해서 그저 까내리고 비판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은 내 스스로 찔렸으면서 말이다.

참 웃긴 인간이다. 잘 웃지는 않으면서.

어떤 사소한 일에도 가벼운 짜증을 내지 않는 진중하면서, 넓은 그릇을 가진 남자가 되고 싶다.

그러기위해 난 오늘도 글을 쓴다. 문득 떠오른 소재에 무작정 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앞 뒤로 위치한 두 개의 거울같다.

내 앞모습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절대 보지 못할 뒷모습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글을 쓰고나면 참 행복하고 뿌듯하다.

그 감정이 난 참 좋다.

그래서 일부러 자기 전에 글을 쓴다.

섭섭하게 보내버린 하루를 기억해주기 위해서.

그 하루와 함께 떠나버린 순간순간의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2025년 12월, 5년 전의 글을 다시 읽는다.

택배기사로 일하다보면 다양한 상황을 겪는다.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도, 친절한 표정과 함께 음료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좋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욕하는 고객을 보기도,

반말의 명령조로 인해 무시 받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고,

배송을 재촉하며 10분 마다 전화 거는 고객도 있고,

타택배사와 비교하며 나무라는 고객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당연히 표정은 무표정이다.

반복되다보니 더욱 무표정을 짓는 습관이 강화되었다.


(이미지 출처 : Chat GPT 이미지 생성)


그러다 문득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을 한 사내가 서있다.

사내와 눈을 마주친다.

그의 눈가에서 무언가를 본다.


서글픈 눈물.

피곤한 다크서클.

두려운 떨림.

무기력한 빛바램.


문득 미안함이 차오른다.

입꼬리를 있는 힘껏 끌어올려본다.


영 어색하다.

눈도 살짝 감으며 휘어본다.


한결 낫다.


이렇게라도 억지로 웃어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구르마를 끌며 사내가 내린다.

사내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보인다.


웃음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유익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