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하기' 장인
(2024년 1월 17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XXX만원..
이번 달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이다.
대학 다닐 때나 공장 다닐 때나(산업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했던 공장) 상상할 수 없었던 월급이다.
2022년부터 택배를 시작했고, 월급은 꾸준히 올랐다.
그러다 이번 달에 처음으로 앞자리 X를 처음 찍어보았다.
참 기쁘고 가슴 벅차야 할 일이다.
근데 왜 내 마음은 이렇게나 공허할까?
왜 그런지 하루종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삶이라 그런가?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가?
육체노동이라 그런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직업이라 그런가?
모두 맞는 이유였다.
이 모든 걸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직업적 성취’였다.
‘직업 만족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꿈’ 혹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직업적 성취’는 있을 수 있고, 세상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직업적 성취’라는 단어가 나의 공허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인 것 같다.
난 일반 공립고등학교 출신이다.
신기하게 우리 학교엔 기숙사가 있었다.
학년 별 남녀 각 10명 남짓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선발 기준은 성적이었고, 일부는 원거리 전형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중간 및 기말 고사 기간에는 내신 공부에 힘쓰고, 모의고사 기간에는 수능 공부에 매진했다.
학기 중간 중간에 있는 수행평가와 교내활동 또한 스펙을 쌓기위해 허투루 하지 않았다.
방학에는 다음 학기 진도를 미리 예습했다.
주 6일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 하루 외박할 때면,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죽을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주변 애들보단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때의 삶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바로 ‘꿈’이다.
대체 난 무얼 바라보며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아마 난 앞이 아니라 옆만 바라보며 살았던 것 같다.
주변애들이 공부하니까, 스펙 쌓으니까, 학원 다니니까, 이것도 저것도 하니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하나보다 하며, 따라하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
남들 따라서 공부하다보면 내 삶이 보장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주말마다 싸우던 부모님.
돈 때문에 오가는 폭언과 욕설들.
그저 공부만을 강요한 어머니.
좋은 성적이나 상장을 받아오면 웃어 보이던 부모님.
그때 만큼은 우리집도 다른 집처럼 화목한 집이 되는 듯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효도하려면 내게 주어진 길은 '공부'뿐이라 생각했다.
그 공부를 잘하기위해 내가 택한 방식은 바로 '따라하기'였던 것이다.
바로 그 따라하기가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 바로 대학 전공 선택이었다.
고 1때는 막연하게 돈 잘 벌고 남들이 알아주는 의사가 꿈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내가 선택한 길 역시 '따라하기'였다.
같이 의사를 지망했던 여러 친구들은 '생명공학'으로 진로를 옮기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영향을 받았다.
그나마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생명공학 계열 혹은 의공학 계열의 진로를 선택했다.
그 진로를 나와서 무얼 할 수 있고, 어디로 취직하는지, 취직 말고는 무슨 길이 있고 무슨 비전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입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2년 학교를 다니다가, 결국 과도 옮기고 휴학도 한 채로 세월은 흘러갔다.
휴학 후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입 준비를 했고, 아쉽게 떨어졌다.
편입 실패 후 공장에서 군대 복무를 했다.
제대 후 여자친구와 일년살이를 떠났다.
엄마가 빌려준 보증금 천 만원을 야금야금 썼다.
유튜브 도전을 했고, 낚시에 미쳐있었다.
빚이 남았고, 카드값 연체의 위기에 빠져서 시작한 것이..
바로 택배였다.
현재는 2024년 1월이다.
그 택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딱 2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할 일을 할 시간, 놀 시간, 서울 다녀올 시간, 누군가를 만날 시간, 데이트할 시간 등.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그 중 오늘의 나에게 가장 크게 절실한 시간은 ‘생각할 시간’이다.
택배할 때 아무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짬시간이 있다지만, 마음 놓고 깊게 생각하긴 좀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난 글을 쓰면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위 문장처럼 휴학 후의 나의 인생을 짧게 돌이켜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우선 안도감이 든다.
이미 택배라는 늪에 빠져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는 갇혀버린 인생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나 아직 젊구나?’식의 안도감이 들었다.
또 동시에 막막한 두려움이 들었다.
바로 그 다음 문장은 무엇으로 연결될까?
여전히 택배면 어쩌지?
무모한 사업 도전으로 인한 실패 및 신용불량자?
여자친구와의 이별?
폐인 생활??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더욱 어둡게 만들 뿐이다.
상황에게 주도당하지 말고, 내가 상황을 주도하자.
“난 다음 문장에 무엇을 넣고 싶은가?”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나의 고민과 연결된다.
바로 ‘주업’이다.
이미 선로를 이탈해 멀어져버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
착실히 주어진 길을 걸어온 누군가에게는 면목이 없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주업을 갖고 싶다.'
회사원이든 뭐든 말이다.
최근에 내가 하려고 하는 것들(카페 창업, 웹소설, 블로그로 돈 벌기 등등)을 알아볼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부업’으로 하라는 것이다.
내 주업이 무엇인가?
현재는 택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몸 쓰는 일.
속된 말로 노가다.
솔직히 현재의 내 주업이 부끄럽다.
아예 모르는 사람 혹은 덜 중요한 사람에게는 떳떳이 밝힐 수는 있어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절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혹시 일하다가 우연찮게 대학 동기를 만난다면?
나에게 고민 상담을 털어놓던 기숙사 후배를 만난다면?
과연 난 떳떳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나 택배기사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나는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을 갖길 원하는가?
나는 글 쓰는 작가의 삶을 원하는 건가?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원하는 건가?
내 사업체를 갖고 싶은 걸까?
대기업에 취직해서 주말 공휴일 쉬고 연차도 쓰며 사내복지를 누리고 싶은 걸까?
명백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다.
정답을 모르겠으니 일단 답안지라도 제출해보자.
현 상황에서 택배가 주업이므로, 부업으로 웹소설을 써보자.
답안지가 과거와 바뀐 게 없다.
하지만 결국 작품을 완결해서, 결과만큼은 차이를 만들어보자.
그러다보면 나도 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