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냐'보다 '어떻게'
(2024년 1월 24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어젯밤 나는 계산을 해보았다.
슬슬 25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달에 얼마 정도의 월급을 받을지가 궁금했다.
스스로 생각해보기만 해도 이번 달은 역대급이었다.
반올림해서 월 천 만원.
거의 월 천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라 놀랐다.
좋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 보다는 현실감각이 없었다.
무감각했다고도 할 수 있다.
월 천.
누군가에게는 성공이 되는 기준 금액일수도.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돈일 수도 있는 금액이다.
나에게는 '내가 감히? 말도 안돼.' 정도의 금액이었다.
기쁘면서도 공허했다.
동시에 자만심도 들었고, 희미한 두려움도 몰려왔다.
서로 상반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에워쌌다.
저번 달에 처음 800을 찍었는데, 900이라니.
이러다 월천을 찍는 거 아니냐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얼마 정도 남을지를 생각해보니 기쁨이 반감되었다.
이번 달엔 지출이 많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택배를 하며 매달 수입이 늘었다.
수입이 늘어나니, 지출 역시 늘어났다.
과거의 내 생각처럼,
많이 버는 게 장땡이 아니었나보다.
한편으론 공허했다.
나의 꿈을 펼치며 만족감을 느끼는 직업이 아닌,
단지 돈벌이 수단인 택배를 통해서 이정도 수익을 이루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절반의 금액이라도,
내가 원하는 일로써 벌게 된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행복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난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확신이 없다.
여전히 찾아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
어쩌면 그래서 택배를 하게 된 것일지도?
기쁨과 공허 사이를 혼자 왔다갔다했다.
이중적인 자아를 발견하여 너무 부끄럽기도 한 하루였다.
이번 달의 수익은 분명 일회성의 수익이다.
절대로 유지될 수가 없다.
계속 그 정도의 수익을 내려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에 900만원, 아니 어쩌면 800만원도 이번이 마지막일거라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만했다.
‘나 이 정도 번다.’라는 오만한 생각이 나의 자존감에 물을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 물은 영양가 없는 썩은 물뿐인데도, 멍청한 나는 그걸 좋다고 실실거렸다.
월 천에 육박하는 수입은 나에게 또 다른 걸 남겼다.
택배 내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 중에도 특히 남 눈치를 더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택배기사는 서로서로 대충 안다.
물건 개당 단가와 기사별 한달 물량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월 수입 역시 알 수 있다.
질투와 시기 혹은 수량과 구역에 대한 눈치 싸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뒤에서 그들끼리 수근대기도 한다.
이런 관계가 나에겐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난 버틴다.
수익성이 확실하니 이 돈벌이를 놓치면 안된다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뺏길까봐 두렵고, 뭐라 하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눈치를 보고 혼자서 쓸데 없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다.
피곤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런 걸 내가 언제까지 하게 될지..
순간 눈 앞이 까마득해진다.
결론적으로,
돈에 대한 감정적 경험을 통해 오늘 내가 얻은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1. 돈이 다가 아니다. '얼마냐'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
2. 혼자 스트레스 받아봐야, 나만 손해다.
3. 눈치보지말고, 내 마음이 동하는대로 행동하자.(단, 정직하게!)
4. 여유자금이 생기면 뭐에 쓸까가 아니라, 겸손하게 저축하는 사람이 되자.
(2026년 현재)
이때 이후로 나의 수입은 하강 곡선을 탔다.
지금은 쿠팡을 탈출하고 다른 택배사를 다닌다.
수입 역시 그때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졌지만, 그래도 다닌다.
저녁 시간이 생겼고, 글쓸 시간이 조금은 생겼다.
돈을 훨씬 못 벌어도,
짐이 더 크고 무거워도,
배송효율이 조금 떨어져도,
난 쿠팡을 떠난 내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
당시 그만큼 벌어보고 느낀 깨달음은 소중했고,
그 과거를 토대 삼아, 오늘을 또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돈을 꿈꾼다.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겐 '어떻게'가 중요해졌다.
당장은 지지부진해 보여도 계속 걸어가보려 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삶인 것 같다.